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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계신다’는 거짓말, 무너진 그리스도인의 정직성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지금 안 계신데요’라는 말은 단순한 관용어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정직성을 근본부터 허무는 심각한 죄악이다. 전화를 피하기 위해, 혹은 불편한 만남을 거절하기 위해 자리에 있는 사람을 없다고 말하는 행위는 명백한 거짓이다. 이것이 사회적 편의...
3억 원의 발전기금, 개혁인가 금권선거의 합법화인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대표회장 임기를 2년으로 연장하고 재정 투명성을 강화하는 개혁안을 내놓았다. 변화를 향한 시도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그 내용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특히 대표회장 후보 자격으로 ‘발전기금 3억 원’을 납부하...
통계의 착시를 넘어, '남은 자'의 실체를 보라
영국 기독교의 쇠퇴론이 과장되었다는 영국복음주의연합의 보고서는 현대 교회가 빠지기 쉬운 통계주의의 함정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숫자로 교회의 흥망성쇠를 재단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단 한 번도 다수의 논리로 전개된 적이 없다. 오히려 하나님은 언제나 ...
순교의 피는 교회의 씨앗, 그러나 무엇을 지킬 것인가
‘거룩한방파제’가 순교의 역사를 따라 전국 565km를 횡단하는 국토순례에 나섰다. ‘핏값으로 지켜진 한국교회, 이제는 우리가 지켜낼 차례’라는 구호는 듣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주기철 목사의 일사각오 신앙과 손양원 목사의 용서, 그리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스...
교회, 왜 자유의 공론장이 되어야 하는가
대한민국광역기독교총연합회가 ‘자유수호 국민대성회’를 통해 교회가 자유와 법치를 지키는 공론장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교회의 정치 참여라며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본질을 오해한 것이다. 교회가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를 수호하는 것은...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말씀에 의지하여’
오늘날 한국 교회의 차세대 사역 현장은 깊은 무력감과 피로감에 젖어 있다. ‘에반젤리컬 포커스’에 실린 댄 랜달의 글처럼, 수많은 사역자가 밤새도록 수고했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한 베드로의 심정으로 ‘얕은 연못’을 탓하며 주저앉아 있다. 온갖 최신 프로그램과 눈높이 교육...
독일 교회의 경고,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혼동하는가
독일 개신교인 세 명 중 한 명이 극우 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을 지지했다는 소식은 단순한 해외 뉴스를 넘어 한국 교회에 보내는 심각한 경고다. 이는 교회가 복음의 절대적 가치보다 세속적 이념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우선할 때 어떤 위험에 처하게 되는지를 극명하게 보...
타로와 수정, 거짓 위안에 기댄 영혼의 파우스트적 거래
영국복음주의연합이 뉴에이지 유행에 대한 안내서를 발간했다는 소식은, 현대 사회의 영적 지형도를 날카롭게 보여주는 하나의 징표다. 타로 카드, 수정의 힘, ‘맨페스테이션’(manifestation)이라 불리는 끌어당김의 법칙 등은 더 이상 소수의 기이한 취미가 아니라, ...
새로운 바벨탑: 뉴에이지와 인공지능의 영적 함정
영적 호기심이 대중문화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영국 복음주의연맹이 뉴에이지 가이드북을 발간할 정도로 타로, 수정, 만트라 등은 현대인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었다. 동시에, 사역의 현장에서는 인공지능(AI)이 제공하는 편리함에 기대어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려는 시도마저 ...
두려움이라는 우상, 시간을 좀먹는 죄악
시간을 낭비하는 행위의 본질이 '두려움'에 있다는 진단은 매우 날카롭다. 이는 단순히 시간 관리의 실패를 넘어, 신앙의 핵심을 관통하는 영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시작하기를 주저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며 시간을 허비할 때, 그 중심에는 하나...
‘경험’이라는 모래 위에 세운 연합의 집
로마 가톨릭과 복음주의 카리스마 운동의 일치 추구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의 연합’이라는 감미로운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그 기저를 파고들면, 신학적 진리가 아닌 주관적 체험을 접착제 삼으려는 위험한 시도임이 명백히 드러난다. 이는 견고한 반석이 아닌, 유동하는...
말의 홍수 시대, '덜 말하기'의 영성을 회복하라
오늘날 강단과 사역 현장은 가히 ‘말의 홍수’ 시대라 할 만하다. 사역자들은 더 많은 정보, 더 깊은 통찰, 더 유창한 언변으로 성도들을 설득하고 감동시키려 애쓴다. 그러나 피터 미드의 지적처럼, 이러한 말의 과잉이 오히려 복음의 핵심을 가리고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는 ...
쾌락의 연기에 잠식된 로토파고스의 후예들
콜로라도의 한 미술 전시회가 대마초 합법화의 어두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예술 작품은 ‘광고된 이미지’와 ‘실제 현실’ 사이의 기만적 간극을 드러내며, 쾌락의 추구가 초래한 사회적 병폐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는 단순히 한 지역의 문제를 넘어, 하나님을 떠...
‘성령 안에서의 일치’인가, ‘진리 없는 연합’인가
로마 가톨릭 카리스마 운동과 복음주의 진영의 연합을 도모하는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오늘날 ‘일치’와 ‘연합’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성령의 능력 안에서의 기독교 일치’라는 표어는 얼핏 경건하고 성경적인 목표처럼 ...
문화라는 전쟁터, 스타일이 아닌 세계관을 분별하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대중문화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종종 길을 잃는다. 한쪽에서는 세상 문화를 사탄의 것으로 규정하고 철저한 단절을 외치며, 다른 한쪽에서는 문화적 즐거움을 위해 그 안에 담긴 비성경적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손성무 목사의 지적처럼, 이러한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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