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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여인
김범규목사(주소망교회)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4-02-02 17:35

본문

예수님은 마지막 일주일간의 공생애 사역 가운데 종말 심판에 대하여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종말에는 창조이래 전무후무한 대환란이 닥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환난의 날을 감해서라도 구원하신다고 하셨지요. 그럼 이러한 종말의 때에 본받을 만한 신앙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한 지 넷째 날에 매우 값진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께 부은 여인을 칭찬하셨습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신앙의 모습입니다.

 

첫째로 값비싼 향유 옥합을 깨뜨리는 온전한 헌신의 신앙 모습입니다.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사건은 성경에 3번 나옵니다.(7, 12, 26장과 막14) 조금씩 다른 것 같지만 결국 하나의 사건입니다.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났는데 바로 그 집에서 한 여인이 향유 한 옥합을 들고 예수님께 나옵니다.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3남매가 아버지 시몬(바리새인, 문둥병자)을 모시고 살고 있었지요. 마리아는 자신이 시집갈 때 쓰려고 모아 두었던 300 데나리온 가치의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붓습니다. 시집갈 때 들고 가려고 준비한 혼수품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온전히 헌신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자신 몸의 장사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십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였던 것이며, 부활을 믿는 신앙의 행위였고, 신랑되신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한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죽으심, 부활하심, 다시오실 것임을 확실히 믿어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온전한 헌신의 신앙과 그렇지 못한 신앙의 모습은 어떻게 다를까요? 이 여인의 헌신하는 신앙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적당히 헌신하고 있는가 온전히 헌신하고 있는가 돌아보게 됩니다.

 

둘째로 값비싼 향유 옥합을 예수님께만 온전히 붓는 오직 예수님 신앙 모습입니다.

 

여인은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 머리에 부었습니다.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 발에 부었다고 했습니다. 머리에 부으니 발까지 흘렀을 수 있고 머리와 발에 부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요점은 예수님께 부었다는 것입니다.

 

가장 귀한 것을 다른데 흘리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붓지 않고 오직 예수님께 부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동차에 기름 넣을 때 한 방울도 흘리지 않으려고 주유기를 살살 다루며 주유통에 기름을 넣습니다. 밥할 때 쌀 한 톨이라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잘 씻어서 밥솥에 넣습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더 소중한 예수님을 위하여 조금도 다른데 흘리거나 분산시키지 않고 예수님께 집중하여 헌신합니다.

 

나는 오직 예수님께 집중하여 헌신하고 있나요? 혹시 나를 한눈팔게 하고 분산시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나로 집중할 수 있을까요? 이 여인의 오직 예수님 신앙 모습을 보면서 나도 예수님께 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세째로 이렇게 헌신하는 여인을 사람들이 책망하며 괴롭혔는데 이것은 예수님 때문에 고난받는 신앙 모습입니다.

 

여인의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사람들이 책망하며 화를 내고 괴롭혔습니다. 가룟유다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 부활하심 다시 오심에 대하여 전혀 깨닫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들은 예수님을 대적하고 결국 배신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위하여 헌신 충성했는데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난받고 핍박을 받았던 것입니다.

 

성도의 삶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좋은 기후, 좋은 땅, 경관이 좋은 곳, 산이 있고 강이 있고 가까이 바다도 있는 곳에 살면서 잘 먹고 적당히 즐기고 적당히 유흥을 즐기는 것일까요? 교회에 일 주일에 한번 가주고, 예배 참석해 주면서, 가끔 아멘 아멘 해주면서 살아가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 땅에서 예수님 믿는 믿음 때문에, 온전히 헌신하며 살다가 겪는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예수님을 전하고 섬기는 것 때문에 어떤 고난을 겪고 있습니까? 어떤 고난까지 각오하고 있습니까? 정말로 대환란을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준비되어 있습니까? 순교자의 숫자가 차면 예수님 다시 오신다고 했는데 과연 나는 순교의 각오까지 되어 있는지 되돌아보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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