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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규 선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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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2)-세상의 끝을 보게하는 마지막 대안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4-05-25 06:17

본문

본지는 전문활동을 통한 최전방 교회개척서인 <돌파>를 연재하며, 전문인 선교에 대해 고찰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 책은 저자 김범규 목사가 이슬람 지역을 20년 가까이 누비며 꼼꼼하게 기록한 훌륭한 안내서이자 지침서이다. -편집자주


행복한 미래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무엇이 행복의 기준이며 척도인가?

사람에 따라 또한 연령별로 다르다. 어린아이는 장난감, 청소년은 컴퓨터 게임, 청년들은 이상적인 배우자, 장년들은 경제적인 여유, 노년들은 건강일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정의와는 다르게 행복을 정의 하신다. 하나뿐인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어 인간과 화해를 도모하실 때 하나님의 초점은 관계 회복에 있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6:33)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요리 문답(문답 1)에서는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하나님을 온전히 즐거워함이다.”라고 하고 있다. 즉 행복이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고 계속 깊어짐을 의미한다. 성경은 또한 말씀한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각에서 행복이란 우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며 그 다음으로는 가족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사업까지 성공한다면 그것은 보너스인 셈이다. 전문적인 활동을 통하여 나 가족 이웃에까지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분명 행복할 것이다. 그러려면 하나님 안에서 확실한 인생의 비젼과 목표를 갖고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잘사는 것과 부자의 차이가 무엇인가? 돈이 많고 부동산이 많은 사람을 우리는 흔히 부자라고 한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행복하고 잘산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잘 사는 것이 행복이요 그 행복은 바로 하나님 안에 있지 않은가?

왕으로서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며 인생의 허무함을 이야기 하였다. 사탕발림의 호사스런 궁중생활이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 것이다. 여호야김 왕은 예레미야 로부터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앞에 분노를 내었다. 칼로 성경 두루마리를 찢고 불타는 화로에 두루마리를 던져 버린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앞에서 자기 옷을 찢으며 우상을 불태웠던 여호야김의 아버지 요시야 왕이 그 장면을 목격했다면 어떤 마음이었겠는가?

참담한 심정으로 아들의 불순함을 바라보지 않았겠는가? 부모 자식간에 단 몇년의 시간적 간극을 두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한것과 같은 왕의 집안이 행복과 불행의 양 극단을 살게 되는 비극적 집안이 되었던 것이다. 여호야김은 이후에 바벨론의 침략으로 죽임을 당하였으며, 그의 시체는 버림을 당하여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36:30) 반면에 같은 시대를 살았던 레갑 자손들(35)은 어떠했는가?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으며, 심지어 포도원도, 밭도, 종자도 소유하지 않았고, 자기들의 살집을 짓지 않았으며 장막에 거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았다. 그들은 철광석을 캐내고, 그것으로 농기구를 만드는 일을 하는 3D업종에 종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건한 레갑 사람들은 비록 갖은 재물은 없었어도 선조 요나답이 준 명령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하여 수백년간 잘 살았으며 행복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나는 한국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청소년기까지 자라났다. 모범생으로 칭찬만 받던 나는 사춘기를 지나면서 방황을 하였다. 사람은 무엇때문에 살며 왜 살아야만 하는가? 하나님을 모르던 나에게 인생이란 그져 주어졌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도 없이 과연 이대로 30대가 되고 40대를 지나 늙고 죽어가는가?

나는 심각한 염세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비관하고 나 자신을 비하하며 공부를 멀리하고 도박에 빠지기도 했다. 십여년 이상 모아온 저금통장을 탈탈 털어서 집을 나갔다. 며칠씩 밤을 지새우며 화톳장에 얼굴을 파묻기도 했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시간 가는줄 모르고 각종 도박을 섭렵했다. 수개월이 지나 남았던것은 파리한 얼굴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잘 먹지도 못하면서 밥먹듯이 밤을 지새우고 화톳장을 깔 때마다 긴장을 많이 해서 그런지 심장병을 얻었다. 정신을 차렸지만 그것은 오로지 육체적 한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내 안에는 계속 부모님이 왜 나를 낳아주셨는지, 무엇이 행복인지, 이대로 죽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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