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천(暳?) 이의완 박사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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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 박사(Ph.D., Th.D.)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복지대학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 매주 수요일 오후 5시 45분 ‘5분 칼럼’ 진행자
사람은 만남이 중요합니다. 그 만남으로 인하여 부모와 만나고 친구와 만나며, 남녀가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안식을 갖는 생활로 발전을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만남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삶의 가치와 자아실현을 통하여 생애의 의미를 담고 살아갑니다.
2016년 초가을에 서울 청파동 언덕 작고 아름다운 공간에서 소중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당시 93세였던 이의완 박사님은 노령의 목회자이지만 아주 정정하셨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미국에 계시는 스승을 고국으로 초청하여 식사하고 선물을 나누며, 다정하게 기념사진도 촬영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르신목사님께서 100세가 되시면 꼭 고국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뒤 출국하셨습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나 100세의 이의완 박사님이 한국에 오셨습니다. 목사님은 혼자서 비행기를 타실 정도로 무척 정정하셨습니다. 100세 기념 성역 감사예배가 안양시 모처에서 진행되었습니다. 1960대 공부하였던 분들은 물론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제자들과 함께하는 뜻깊은 행사였습니다. 하나님의 종 이의완 목사님은 1923년에 태어나 일제강점기 매우 어려웠던 시절부터 곧은 역사관으로 사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확신과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으며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애국운동으로 헌신하셨던 분이셨습니다.
이의완 목사님은 1948년 남대문교회에서 담임하였던 김치선 박사님과 함께 전도특공대를 조직하였습니다. 당시 인구가 삼천만으로 이만팔천 동네가 있었는데 민족복음화를 위하여 전국 곳곳에 전도특공대를 파송하고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 열정과 애국의 정신으로 대한민국 복음화를 위한 삼백만부흥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이의완 목사님은 전도특공대 대원들과 함께 휴전선 넘어 개성과 북한지역으로 파송을 받아 복음을 전하다가 1950년 6.25 한국전쟁을 그곳에서 맞이하였지만 남한으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그 후에도 복음을 전하는 사역으로 한국교회의 부흥과 교회 성장에 크게 이바지 하였습니다.
지금 이처럼 대한민국이 발전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전폭적인 은혜였습니다. 한국교회 성도들의 새벽기도와 철야기도를 통하여 성장하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시편 72편 17절에 보면 “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 하였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이 복을 받은 것처럼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기쁨으로 함께 하시길 소망합니다.
현재 건강하게 장수의 복을 누리고 계시는 이의완 박사님을 주님의 이름으로 응원하고 축복합니다. 그는 대한신학교(현 안양대학교) 교장과 총회장을 역임하였고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교단의 큰 스승이십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90편 10절에 말씀하였지만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장수의 복을 하나님이 주셔야합니다.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고 믿음의 명문 가문의 되어 오직 예수님의 복음 안에서 현세와 내세에 복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신명기 34장 7절에 보면 “모세가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귀하신 이의완 목사님께서도 모세와 같이 항상 건강하시고 성역의 길이 형통하시길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독자들도 하나님을 경배하고 교회와 삶에서 잘 섬기며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일에 앞장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자손들까지 하나님께 소중하게 쓰임 받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