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세계에 대한 기대와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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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 박사(Ph.D., Th.D.)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복지대학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 매주 수요일 오후 5시 45분 ‘5분 칼럼’ 진행자
로마시대는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황제 숭배를 강요했다. 갈수록 황제 숭배가 악랄하게 강요되자 초대교회 성도들은 더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피난처로 삼은 곳이 지하의 땅굴이었다. 카타콤이라고 불리는 이 땅굴은 로마 건축을 위해 오랫동안 토공들이 흙을 파내기 위해 시작된 곳인데 수백 년을 지나면서 이 땅굴은 끝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거미줄처럼 뻗어 나간 천혜의 요새가 되었다.
그러나 습기가 차고 어두운 카타콤은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었다. 박해를 피해 지하로 숨어든 사람들은 극한 환경으로 병약해지고 때로는 죽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죽은 자들을 위해 땅굴 속에 무덤을 팠고 벽에다 내세의 소원을 말하는 성구와 자신들의 소원을 새겨 넣었다.
때로는 바깥 세상에 나갔다가 체포되어 큰 원형 경기장으로 끌려가 며칠씩 굶긴 사자들의 밥으로 사라져 갔다. 그러나 카타콤의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은 성도들이 미래의 영원한 세계를 소망하는 진리 근거가 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19절을 보면,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 말씀하였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미래의 영원한 세계를 소망하였기에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들의 밥이 될 순간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사망을 조소하듯 찬송시를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순교자들의 모습이 숭고하였지만 특별히 베드로는 주님과 같이 똑바로 십자가에 달려 죽을 수 없다고 해서 거꾸로 달려 죽었고, 베드로의 수제자 이그나티우스는 사자에게 물려 죽었는데 그의 감동스러운 비화가 전해지고 있다.
80세가 넘은 이그나티우스를 향하여 재판관이 “네가 예수를 배반한다고만 말하라 그러면 살려 주겠다”고 하자 그는 “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예수를 믿어왔는데 그분은 한 번도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어찌 그분을 배반할 수 있겠는가?”라고 거부함으로써 결국 사자 굴에 던져졌다.
굶주린 사자들이 달려들어 그의 허벅지를 물어뜯자 그는 사자를 보고 박장대소하면서 “사자여 빨리 내 허벅다리를 깨물어라 그리고 내 갈비뼈를 파헤쳐라 허파를 끌어내고 심장을 끌어내라 그래서 나를 속히 내 사랑하는 주님 앞으로 보내다오”라고 하면서 순교했다는 것이다.
바울의 말대로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다면 초대교회 성도들만큼 불쌍한 자들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부활의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삶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들은 불쌍한 자들이 아니라 순교로써 하늘나라에서 최고의 영광을 얻은 행복한 자들이었다.
예수의 부활을 믿음으로써 미래의 영원한 세계를 소망했던 초대교회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힘써 복음을 전했고 교회는 날이 갈수록 왕성해졌다. 마침내 로마는 주후 313년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의 유명한 기독교 작가인 엔도 슈삭은 예수의 허무한 죽음 이후 어떻게 해서 예수의 종교, 기독교가 혹독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급속히 팽창되었는지를 연구하다가 부활 밖에는 그 이유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후「예수의 생애」와「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소설을 쓰게 되었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미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없다면 그 누구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도 부활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면 이 세상에서 아무리 심한 고난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 만약에 기독교인이 죽음의 위기에 직면해도 두려워하거나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 진리를 믿으며 이 땅에서 신앙생활하는 크리스천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을 신뢰하고 천국의 소망으로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