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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과 순교자의 정신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4-03-26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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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 박사(Ph.D., Th.D.)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복지대학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 매주 수요일 오후 5 45 ‘5분 칼럼’ 진행자

 

로마제국 시대는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황제숭배를 강요했다. 갈수록 황제숭배가 악랄하게 강요되자 초대교회 성도들은 현실 위에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피난처로 삼은 곳이 지하의 땅굴이었다. 카타콤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로마건축을 위해 오랫동안 토공들이 흙을 파내며 시작된 곳이다. 이 땅굴은 수백 년을 지나면서 끝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거미줄처럼 뻗어나간 천혜의 요새가 되었다.

 

그러나 습기가 차고 어두운 카타콤은 사람이 정상적으로 살만한 곳이 아니었다. 극한 환경으로 인해 병약해지고 때로는 죽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죽은 자들을 위해 땅굴 속 좌우 높은 곳에 구멍을 파고 벽에다 내세의 소원을 말하는 성구와 자신들의 소원을 새겨 넣었다.

 

때로는 바깥 세상에 나갔다가 체포되어 큰 원형 경기장으로 끌려가 며칠씩 굶긴 사자들과 맹견의 밥으로 사라져 갔다. 그러나 카타콤의 성도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믿음을 고백하는 기쁨의 노래를 불렀다. 예수님의 부활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미래의 영원한 세계를 소망하는 진리 근거가 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19절을 보면,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 말씀하였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미래의 영원한 세계를 소망하였기에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들의 밥이 될 순간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사망을 조소하듯 찬송시를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순교자들의 모습이 숭고하였지만 특별히 베드로는 주님과 같이 똑바로 십자가에 달려 죽을 수 없다고 해서 거꾸로 달려 죽었고 베드로의 수제자 이그나티우스는 사자에게 물려 죽었는데 그의 감동스러운 비화가 전해지고 있다.

 

80이 넘은 이그나티우스를 향하여 재판관이 네가 예수를 배반한다고만 말하라 그러면 살려 주겠다고 하자 그는 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예수를 믿어왔는데 그 분은 한 번도 나를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그 분을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거부함으로써 결국 사자 굴에 던져졌다. 굶주린 사자들이 달려들어 그의 허벅지를 물어뜯자 그는 사자를 보고 박장대소하면서 사자여 빨리 내 허벅다리를 깨물어라 그리고 내 갈비뼈를 파헤쳐라 허파를 끌어내고 심장을 끌어내라 그래서 나를 속히 내 사랑하는 주님 앞으로 보내다오라고 하면서 순교했다.

 

로마제국 초대교회는 황제들의 10대 박해를 통하여 순교라는 쓰라린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성도들은 믿음의 생활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건 생활의 연속이었다. 지하무덤 속 카타콤의 성도들을 뇌리에 떠올리며 기도하니 마음이 먹먹해질 뿐이다.

 

그들은 어떻게 맹수에게 산체로 자신의 살이 뜯기고 뼈가 바스라지면서도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신앙을 잃지 않고 배교하지 않았는지 확실한 영성이 그리워진다. 우리가 평소에 장식용으로 달고 다녔던 물고기 형상 익투스는 그 당시에 암호로 사용되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라는 단어의 첫 이니설로 구성된 것으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를 대변하는 피의 고기였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하다. 그 익투스라는 단어 안에 생명의 위태함 속에서 나오는 믿음의 고백은 물론이거니와 한 가족과 개인의 피 맺힌 절절한 부르짖음이 담겨져 있음을 다시 깨닫게 된다.

 

시편 11971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는 고백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교회 성도들은 카타콤과 같은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는 상황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직 주님만 붙들고 천국의 소망을 두고 사명의 자리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불평하지 않으며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을 소유하여 순교자 정신으로 오늘을 살아보자. 초대교회 황제들의 박해와 고난 가운데서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교하지 않으면서 심령이 기뻐하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도 즐거워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기를 성령 안에서 성령에 의하여 밤낮으로 기도하며 살아가기를 다짐해 본다.

 

바울의 말대로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다면 초대교회 성도들만큼 불쌍한 자들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부활의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삶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들은 불쌍한 자들이 아니라 순교로써 하늘나라에서 최고의 영광을 얻은 행복한 자들이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음으로써 미래의 영원한 세계를 소망했던 초대교회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힘써 복음을 전했고 교회는 날이 갈수록 왕성해졌다. 마침내 로마제국은 주후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의 유명한 기독교 작가인 엔도 슈삭은 예수님의 허무한 죽음 이후 어떻게 해서 예수의 종교, 기독교가 혹독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급속히 팽창되었는지를 연구하다가 부활 밖에는 그 이유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후 예수의 생애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소설을 쓰게 되었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미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없다면 그 누구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도 부활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면 이 세상에서 아무리 환난과 박해를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죽음의 위기에 직면해도 두려워하거나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깨닫고 신앙 생활하는 독자들은 다시금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을 굳게 믿으며 천국의 소망으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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