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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나비효과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4-03-18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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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 박사(Ph.D., Th.D.)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복지대학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 매주 수요일 오후 5시 45분 ‘5분 칼럼’ 진행자


이 땅에 태어난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고 그 앞에서 소중한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그러나 짧은 인생을 어떻게 하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것인가는 우리에게 평생 던져 주는 질문이다. 

 

세계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복음을 위하여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진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중에 오늘은 스텐 벅(S. Berg)이라는 독일의 화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교회를 다니는 거듭남의 체험이 없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었다. 그 당시의 화가들은 정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성화를 그리는 것이 관례였다. 그도 역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장면을 그려 화실 한편에 세워두었다.

 

어느 날 무심코 길을 가던 스텐 벅은 아리따운 집시 아가씨를 보고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 작품이 완성된 후 그녀가 스텐 벅의 성화를 보고 물었다.

 

벌거벗긴 채 십자가에 이토록 비참하게 못 박힌 저기 계신 분은 큰 죄를 지은 모양이죠? 저토록 혹독한 형벌을 받고 있으니 말이에요.”

 

스텐 벅은 교회에서 들은 대로 설명을 했다.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의로운 사람입니다. 다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선생님, 그러면 내 죄를 위해서도 저분이 십자가에 달리셨나요?” “, 그렇지요.” “그러면 선생님의 죄도 저분이 담당하셨나요?” “, 그렇습니다.” “! 참 고마운 분이군요. 나는 그런 줄 몰랐습니다. 저분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까운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믿으세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곤 눈물을 흘리며 화실을 떠났다. 그녀가 돌아간 후부터 스텐 벅의 머릿속에서 그 여인의 질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저분이 선생님의 죄를 위해서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나요?” 계속해서 떠오르는 그 말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날 밤 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회개했다. “예수님, 제가 주님을 머리로만 믿었습니다. 이제 내가 예수님을 위해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 앞에 나의 삶을 드립니다.”

 

그는 진정한 신앙을 고백하며 그림 밑에 문장 하나를 써 넣었다. ‘내 너를 위해 몸 바쳐 피 흘렸건만 너 나를 위해 무엇 하느냐?’

 

그의 그림이 한 미술관에 걸리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젠도르프(N. L. Zendorf)라는 젊은 백작이 미술관에 우연히 들렀다. 무심히 그림들을 돌아보던 그는 스텐 벅의 그림 앞에서 감전된 듯 움직이지 못했다. 특별히 그림 밑에 쓰인 구절이 그의 심장에 비수와 같이 꽂혔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진젠도르프 백작의 삶은 온전히 변화되었다. 많은 재산을 처분하여 모라비안 형제단이라는 선교단체에 헌금하였고 그 자신도 선교단의 일원이 되었다.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모라비안 형제단은 진젠도르프 백작의 많은 헌금과 헌신을 통해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AD17?18세기의 유럽은 중세 봉건사회에서 근대 시민사회로 넘어오며 많은 투쟁이 있었다. 황제의 폭력과 독재에 대항하는 시민세력들이 일어나면서 황제의 권한과 부딪쳤고 프랑스는 시민 혁명 중에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다. 그러나 영국만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무혈혁명으로 중세 봉건사회에서 근대 시민사회로 넘어갔다.

 

그 이유에 대하여 역사학자 칼라일(T. Carlyle)은 두 가지로 지적했다. 하나는 황제의 권력이 비교적 분점된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존 웨슬리의 공이었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회심한 웨슬리 목사가 영국을 순회하면서 외친 성결 회개운동이 영국의 변화를 영적으로 주도하고 프랑스와 다른 사회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각 시대에는 한 사람의 변화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한 집시 아가씨의 감격의 눈물이 화가 스텐 벅을 변화시켰다. 스텐 벅의 회개를 통하여 진젠도르프 백작이 변화되었으며, 진젠도르프가 새 사람이 되자 모라비안 형제단이 새로워질 수 있었다.

 

모라비안 형제단의 선교사가 존 웨슬리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존 웨슬리가 근세사회로 혹독한 영국사회를 영적으로 주도할 수 있었다. 웨슬리 성결운동은 19세기 영국교회의 세계선교로 뻗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나아가 20세기의 미국교회 부흥운동의 불씨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에서 한 사람이 매우 중요하다. 가정, 직장, 교회, 특히 국가적인 중요한 총선을 치루고 있는 우리나라는 삶의 현장에서 나 한사람이 변화되면 일파만파의 파장이 일어 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나부터 변화를 받아 사회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기를 기대한다.

 

이것이 신앙의 나비효과인 것이다. 이것을 어찌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지금까지 지극히 작은 한 사람을 통해서 일하셨다. 그렇다면 오늘 한 사람의 감격의 눈물이 이와 같이 놀라운 역사를 이끌어 내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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