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무게, 용서의 은혜 > 칼럼 > 한국교회공보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칼럼

HOME  >  오피니언  >  칼럼

[DSTV칼럼] 기억의 무게, 용서의 은혜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5-26 07:00

본문

“하나님이 용서하시는데, 왜 우리는 그러지 못하는가?” 신문의 한 귀퉁이에서 발견한 이 질문이 하루 종일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어떤 기억은 희미한 흉터로 남지만, 어떤 기억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깊은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나에게 상처 준 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오늘 아침, 제주 4·3 사건 78주년을 맞아 한국 교회가 추모기도회를 연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한 개인의 상처를 넘어, 한 공동체와 민족 전체가 짊어진 기억의 무게는 얼마나 더 무거울까요. 이념의 광기가 할퀴고 간 상처,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영혼의 아픔은 78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우리 역사 속에 생생한 고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거대한 비극 앞에서 ‘용서’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은 너무나 조심스럽고 때로는 공허하게 들리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그 용서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네덜란드의 여류 작가 코리 텐 붐 여사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나치 강제수용소에 끌려갔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언니를 잃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녀는 전 세계를 다니며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역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일의 한 교회에서 간증을 마친 뒤, 한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는 바로 언니가 죽어갔던 라벤스브뤼크 수용소의 악명 높은 간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회개했다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코리 텐 붐 여사는 그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고 고백합니다. 마음속에서는 증오가 불타올랐지만, 그녀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이 사람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용서를 저에게 주십시오.” 그리고 기계적으로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는 순간,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과 용서가 자신의 팔을 통해 그에게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녀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경험했습니다.

코리 텐 붐의 이야기는 용서가 우리의 감정이나 의지의 산물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내 힘으로는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십자가에서 나를 먼저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순종할 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기억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는 개인과 공동체 위에, 이 용서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용서는 과거를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고통이 더 이상 나의 현재와 미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그 사슬을 끊어내는 해방의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6:14-15)
기사 공유하기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