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60대 가장(家長) 이야기
박래석 목사, 장미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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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에 가졌던 직업을 40년 넘도록 변함없이 지키며 살아오는 어느 60대 가장의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을 끔찍이 사랑해 학업을 포기하면서 까지 뭐든 다 드려 부모님을 섬기며 가정에 헌신했습니다.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하는 고달픈 가정을 위해서 불평한마디 없이 무작정 자신을 내던졌기에, 요즘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들이 생각하는 직장은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일찍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현실에 눈을 떠 성실함이란 이름 가지고 객지에 뒹굴며 기술을 배워 나름 의미 있는 삶을 시작했습니다.
이러 저리 10여년, 결혼 정년이 넘어가면서 예쁘고 참한 여인을 만나 단칸방에서 행복을 꿈꾸는 가정을 꾸렸습니다. 직업상 한 곳에 머물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 거의 전국을 휘돌아 다녔다 할지라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아이도 낳고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괜찮은 아파트도 마련하며 그렇게 고달픈 세월을 이겨 나갔습니다. 식구가 하나씩 더 늘어 가면서 60대 가장은 삶에 대한 열의를 더 가졌습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그렇게 삶은 다져져 갔습니다.
아이들 결혼식에는 젊을 때 맑고 탱탱했던 피부도 어느새, 살아 온 세월과 함께 기미끼고 거무튀튀해져 볼품없어졌지만 제법 멋스럽게 폼도 내보았습니다.
세월의 불꽃에 익어 거무죽죽한 얼굴이 되었을지라도 미소를 띨 때면 아직도 소년의 행복이 담긴 순박함이 넘쳐 나고 있습니다.
어느 날, 피로에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다가 쓰러져 두개골에 골절이 생겼습니다.
급히 병원에 옮겨 겨우 죽음의 선을 넘어가는 위기는 멈췄습니다. 이외도 일을 하다가 강물에 빠지며, 몸이 깨지고 부서지기를 수도 없이 그 세월을 보냈습니다.
얼마 후 갑자기 복통이 생겨 응급실에 실려 갔더니 충수(맹장)염이라 급히 수술했습니다.
수술 후 3일간 입원 후 집에서 잠시 휴식해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도 뒤로 한 채, 혹시 염증이 재발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버리지 못하는, 아니 죽어도 버리거나 멈출 수 없을 것 같은 직업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 숱한 질곡의 현실에서도 어린 20대 시절 배웠던 직업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단 한 가지, 사랑하는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자녀들을 책임져야 하는 외로운 가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장(家長)이란 이름 하나 때문에 자신의 삶은 접어두고 누구 하나 위로해 주지 않을 지라도, 절망하지도 하지 못하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독이고 있습니다.
고독을 친구로 삼고 외롭도록 홀로 걸어가야만 하며,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무슨 위기를 만날지 모른 채,
주어진 삶에 충실해야 하는,
어느 60대 가장의 가슴 시린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먹잇감을 낚아채려는 늑대처럼 달려드는 세월과 현실 앞에서 70대 이후에는 어떤 가장(家長)이 되어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