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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과 선교
조성호 목사, 대신세계선교회 회장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1-08-2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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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호 목사, 대신세계선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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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은 전염병을 심판과 연단이란 이중적 관점으로 이해했다. 즉 전염병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지만, 또 자신의 백성들이 죄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한 연단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연단 중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겪는 고통을 천사들을 보내어 돌보시고 극복하게 하신다고 이해했다. 칼빈은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질병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겸손하게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라고 권면하였다. 또 전염병으로 고통 가운데 있는 이웃을 위하여 돌보고 위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책무라고 가르쳤다. 칼빈이 목회하던 스위스 제네바에 전염병이 창궐할 때, 그는 도피하지 않고 병원 사역과 교육사역을 통하여 제네바 시민들을 섬겼다. 그는 흑사병에 걸린 환자들에게 치료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 영생의 소망을 제시하여 줌으로써 환자들의 선교에 힘썼다.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쯔빙글리가 취리히에서 사역하고 있을 때, 흑사병이 발생하여 도시의 인구 4분의 1이 죽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는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환자들을 돌보고, 죽은 사람들의 장례를 치러 주었다. 그는 자기 몸을 돌보지 않은 헌신적 목회로 말미암아 결국 그도 흑사병에 감염돼서 사경을 헤매기도 하였다. 

이러한 종교개혁자들의 노력은 종교개혁 시대의 개신교 선교에 크게 기여하여, 흑사병이 끝났을 때 교회는 비약적인 부흥과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초기 개신교 선교의 특징은 의료와 교육선교에 있었다.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선교 거점 지역에 미션 스테이션(mission station)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교회와 학교 그리고 병원을 건립하여 유기적으로 사역하였다. 1903년 초 천연두가 유행하여 수 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을 때 캐나다의 의료선교사인 애비슨(Oliver R. Avison)은 서울에 병원을 설치하여 길가에 버려져서 폭염과 폭우에 시달리면서 죽어가는 가난한 환자들은 병원에 입원시키고, 따듯하게 보살펴 줌으로써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보여 주었다. 더불어 애비슨은 천연두 예방접종을 시행하였다. 당시 의료선교사들과 조선 기독교인들의 환자들을 위한 사랑의 실천은 조선인들과 정부에 큰 감동을 주었다. 당시 고종황제는 환자들을 돌보고 치료하는 의료선교사들에게 감사와 호의를 베풀었고, 이러한 황제의 호의는 선교사들이 활동하면서 복음을 전하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의 기록에 의하면 콜레라로 인하여 1886년 7월에 10일간 3000여 명이 사망하였고, 콜레라가 절정에 달하였을 때에는 하루에 460명이 사망하였는데 서울의 사대문 안 인구 15만 명 중 사망자가 1만 2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의료선교사였던 알렌은 조선이 콜레라에 취약한 것은 오염된 식수나 음식물, 지저분한 하수구의 오물 등의 열악한 생활환경이 원인이 된다고 판단하여 음식을 날 것으로 먹지 말고 끓여먹고, 채소와 과일은 소금물로 씻어 먹을 것을 권장하여 콜레라를 예방하려고 노력하였다.

당시 애비슨과 웰즈(James Hunter Wells)를 비롯한 의료선교사들이 콜레라 환자 수 천 명을 치료함으로 조선인들과 정부에 큰 신뢰를 얻었다. 애비슨은 조선 정부의 도움을 받아 경찰 지휘권까지 위임받아서 전염병 퇴치를 위한 사역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전염병에 대하여 무지하였던 조선인들을 계몽하기 위하여 병의 원인과 예방에 대한 인쇄물을 만들어 배포하였다. 

그의 사역은 조선인들과 정부에 큰 감동을 주었고 선교사역을 하는 데 있어서 크게 기여하였다고 평가된다.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는 한양성 안의 곳곳에 설치된 검역소의 책임자로 봉사하면서 응급환자들을 돌보았다. 진료가 끝나고 저녁마다 진료소의 마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선교사의 사역을 신뢰하게 된 조선 정부도 선교사들의 사역에 협조하여 임시 응급병원을 세우고, 위생법을 실시하며, 전염병 퇴치를 위하여 예산을 투입하였다. 선교사들과 조선의 기독교인들의 노력은 효과적으로 전염병 퇴치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전염병 환자를 돌보았던 의료사역은 절망에 빠져있는 조선인들에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나타내었고, 사업은 나날이 번창하였다고 언더우드는 증언하고 있다. 서구선교사들이 소개한 서양의술은 19세기 한국에서 의학혁명을 가져왔고 한국 근대의술의 획기적인 변화를 주었다고 평가되었다. 이러한 교육사역과 의료사역은 한국 개신교 선교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20세기 이후에도 팬데믹은 세계적으로 반복되었다.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은 5천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었고, 홍콩독감(1968)과 아시아독감(1957)이 유행하여 각각 10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었다. 2015년에는 MERS, 2009년에는 신종플루, 2002-2005년에는 조류독감과 SARS가 유행하였다. 학자들은 세계가 COVID-19 이전의 시대와 COVID-19 이후의 시대로 나뉘는 사회적 변화를 예측하고 있다. COVID-19는 국가경제는 물론 세계경제를 흔들었고, 교회에도 큰 어려움을 주었다.    

COVID-19로 인하여 한국교회와 선교는 분명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그동안의 선교역사를 살펴보면 유행했던 팬데믹들이 교회 공동체와 선교에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어려움을 당한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의 자발적인 이웃사랑 실천은 지역사회에서 이웃들에게 큰 감동을 선물하였고 교회 내부적으로는 신앙의 확신과 결속력을 갖게 했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팬데믹 창궐 시 보여준 생명을 도외시한 이웃사랑은 교회와 상관없는 일반인들에게까지 차별 없이 베푼 사랑이었다.  ‘순교’는 라틴어로 ‘martyrium’인데 헬라어 ‘마루투리온(μαρτυριον)’에서 유래하였다. 마루투리온의 원래 뜻은 ‘증인’이란 의미인데, 따라서 ‘순교’와 ‘증인’은 그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죽기까지 이웃을 섬길 때,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언’이며 확실한 선교가 되는 것으로, ‘순교’는 ‘복음’ 대한 궁극적 ‘증언’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팬데믹의 어려움은 오히려 선교를 역동적으로 만들고, 흡입력으로서의 내적 요인을 강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COVID-19는 우리의 경제·사회·문화·교육·종교 전반에 큰 위기와 변화를 가져왔으며 문명사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COVID-19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뒤흔들고 세계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이를 긍정적 측면에서 활용하려고 할 때, 온라인 비대면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재택근무·원격근무는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사역할 수 있는 선교의 툴을 제공하며, 자기개발과 본국과의 연결을 용이하게 해주며, 시공간을 넘어서는 연대의 틀을 제공하여 떨어져 있으나 서로를 연결해 주는 강력한 선교의 도구가 된다. 이를 위한 선교사 계속 교육과 지원이 필요하다. 장기간 학교 휴교로 인하여 어려움에 처해있는 학교와 자신을 지켜주던 울타리와 사회안전망인 학교를 잃어버린 학생들에 대한 선교적 지원과 관심이 요청된다. COVID-19는 부의 불균형·계층 간 격차·실업자 폭증·사회적 약자나 비주류에 대한 혐오와 공격성 그리고 감시를 심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된 복음 안에서의 사랑의 실천과 헌신은 선교현장에서 큰 비용 없이 활용 가능하며 COVID-19 위기는 선교적인 한국교회가 활발하게 세계를 섬길 수 있는 좋은 선교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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