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TV칼럼] 무너진 성벽을 위한 기도
김의선 목사 기자
작성일 2026-06-03 07:10
본문
머나먼 땅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들려온 소식에 가슴이 내려앉습니다.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뉴라이프교회의 예배당과 주일학교가 처참히 파괴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부서진 창문과 무너진 벽의 사진은 단순한 건물의 파괴를 넘어, 전쟁의 광기 속에 신음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주일 아침, 당연하게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는 우리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건 기도가 되고 있음을 생각하니 숙연해집니다.
이 소식을 접하며 문득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탔다는 소식을 들었던 느헤미야가 떠오릅니다. 그는 고국을 떠나 이방 땅의 왕궁에서 높은 관직에 올라 안락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국의 비극적인 소식을 듣자 그는 주저앉아 수일 동안 슬피 울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성경은 그의 기도를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헤미야 1:4). 그는 멀리서 들려온 소식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무너진 성벽은 곧 자신의 무너진 마음이었고, 백성의 고통은 자신의 고통이었습니다.
키이우 교회의 무너진 벽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단지 우크라이나만의 아픔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아픔입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는다는(고전 12:26) 말씀처럼, 키이우 교회의 신음은 바로 우리의 신음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제 안락한 일상에 대한 감사를 넘어, 무너진 성벽을 끌어안고 우는 느헤미야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이들을 위해, 복음의 최전선에서 피 흘리는 형제자매들을 위해 눈물로 중보해야 할 때입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유기적인 생명 공동체입니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는 기도로써 키이우의 성도들과 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포탄을 막는 방패가 되고, 우리의 따뜻한 마음이 모여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벽돌 한 장이 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 무너진 성벽을 가슴에 품고 하늘의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한 사람의 느헤미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소식을 접하며 문득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탔다는 소식을 들었던 느헤미야가 떠오릅니다. 그는 고국을 떠나 이방 땅의 왕궁에서 높은 관직에 올라 안락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국의 비극적인 소식을 듣자 그는 주저앉아 수일 동안 슬피 울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성경은 그의 기도를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헤미야 1:4). 그는 멀리서 들려온 소식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무너진 성벽은 곧 자신의 무너진 마음이었고, 백성의 고통은 자신의 고통이었습니다.
키이우 교회의 무너진 벽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단지 우크라이나만의 아픔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아픔입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는다는(고전 12:26) 말씀처럼, 키이우 교회의 신음은 바로 우리의 신음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제 안락한 일상에 대한 감사를 넘어, 무너진 성벽을 끌어안고 우는 느헤미야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이들을 위해, 복음의 최전선에서 피 흘리는 형제자매들을 위해 눈물로 중보해야 할 때입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유기적인 생명 공동체입니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는 기도로써 키이우의 성도들과 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포탄을 막는 방패가 되고, 우리의 따뜻한 마음이 모여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벽돌 한 장이 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 무너진 성벽을 가슴에 품고 하늘의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한 사람의 느헤미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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