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TV칼럼] [백현빈 칼럼] 누군가의 눈에는 우리도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글/백현빈(마을의 인문학 대표, 칼럼니스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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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에서 활동하면서 시민이 시민을 스스로 업신여기는 사례를 볼 때 필자는 큰 안타까움을 느낀다.
예컨대 여러 행정 위원회나 공적인 조직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스스로 다른 시민과 차별화된 선민의식(選民意識)을 갖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활동에 참여하는 분들은 상대적으로 오랜 활동 경험 등을 갖고 있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이해도가 다소 낮은 시민을 부족하거나 우매하다고 단언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본다.
이러한 소신을 갖고 필자는 화성시 주민참여예산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되게 하는 참여예산’을 지향했다. 같은 시민으로서 다른 시민이 제안한 사업을 살펴볼 때 윗자리의 심사자로 서기보다는 옆자리의 협력자로 함께하며 조정하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행정 서류를 작성하고 공공의 논리에 맞게 체계적으로 설득하는 역량이 조금 부족하다고 해서 그들의 제안을 곧바로 미흡하다거나 낭비라고 지적하고 배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관존민비(官尊民卑)를 비판하며 민주주의를 이루어낸 시민사회가 다시 누군가를 높고 낮음으로 구분한다면 그 민주주의는 얼마나 모순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정치철학자 존 롤스(J. Rawls)는 ‘정의(justice)’의 전제로서 ‘무지의 베일’을 말한다.
이는 누가 얼마나 가져야 하는가를 묻는 정의의 문제를 말하기에 앞서, 모두가 자신이 어떤 처지와 입장에 서 있을지 알 수 없도록 베일에 싸여 있는 것이 정의로움의 첫 출발임을 뜻한다.
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에 안대를 한 이유도 이처럼 특정한 상황에 편중되지 않는 태도가 정의의 출발임을 말하려 한 것으로 본다.
결국 진정으로 공정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나도, 타인도, 우리 서로도 어떠한 입장에 놓일지를 미리 알 수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살면서 한 번도 아프지 않고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으며 힘든 일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공공의 복지와 같은 정부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누구도 그것을 장담하거나 정확히 알 수 없기에 그 필요성에 공감하고, 보험료를 내듯이 공공에 일정한 부담을 하고 있다.
이렇듯 모두 똑같은 ‘무지의 베일’을 갖고 있을 때 진정한 정의가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전제가 온전히 성립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우리의 인식 속에 항상 ‘무지의 베일’을 전제하고 있어야 한다.
나도 타인도 다양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바로 공감의 출발임을 믿는다.
필자가 오래 전 처음 지역 문제에 의문을 갖고 마을공동체에 나왔을 때 직면했던 것은 ‘불통의 높은 벽’이었다.
논리의 옳고 그름을 떠나 누가 말하는가에 따라, 예컨대 남성이 말하는가 여성이 말하는가 아니면 연장자가 말하는가 연소자가 말하는가에 따라 목소리가 반영되는 여부가 달라지는 것은 진정한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
필자는 현장에서 끊임없이 많은 시민들을 만나고 설득하며 지역에서부터 변화를 만들어갔지만, 궁극적으로 소통의 불평등은 어딘가에서 계속 일어났다.
지금 어떤 회의장에서 주류에 섰다 하더라도 그가 다른 회의장이나 더 큰 권력과의 관계에서 계속 주류라는 보장은 없다. 시민 역시 어떤 상황에서 다른 시민을 대표하며 우위에 선 것처럼 심사자가 될지라도 그 시민 역시 더 힘 있는 권력자에게는 심사받고 지적받는 미미한 대상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이 전제를 기억한다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갑질’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으리라 본다.
정호승 시인의 시 “수선화에게” 속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사람은 물론이고 자연도, 현상도, 심지어 신(神)도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대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우위에 서 있다고 해도 더 높이 있는 누군가 앞에 우리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
이 전제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본다면 ‘연대’의 키워드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지점에서 정책을 만들고 정치를 펼칠 때, 실제로 서로의 삶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 ‘공감’이 더욱 필요한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