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사역’의 회복, 고립의 시대를 향한 교회의 응답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8-04 07:10
본문
세계보건기구(WHO)와 로잔 운동이 동시에 현대 사회의 가장 심각한 질병으로 ‘고립’과 ‘외로움’을 지목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감정을 넘어 사회 구조를 위협하는 전 지구적 위기이며, 교회에 던지는 준엄한 질문이다. 과연 교회는 이 고립의 시대에 진정한 공동체로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가. 제이슨 리옹이 제안한 ‘관계의 깊이를 인내심 있게 가꾸는 느린 사역’은 이 질문에 대한 유일하고도 성경적인 해답이다.
안타깝게도 현대 교회는 종종 이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효율성과 가시적 성과를 중시하는 현대 경영의 원리가 교회 운영에 무분별하게 도입되면서, 교회는 영적 친교(코이노니아)의 공동체이기보다 잘 짜인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서비스 기관처럼 변모했다. 주일의 짧은 만남과 형식적인 교제, 대형화된 익명성 속에서 성도들은 함께 있지만 외로운 ‘군중 속의 고독’을 경험한다.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서로 깊이 연결된 지체라는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나치 정권 아래서 고난받는 교회의 현실 속에서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저서 『성도의 공동생활』을 통해 기독교 공동체의 본질을 역설했다. 그는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공동체, 즉 ‘소원의 공동체’를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했다. 우리의 감정과 기대에 기반한 공동체는 반드시 실망하고 깨어지기 마련이다. 참된 기독교 공동체는 우리의 이상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영적 현실’이다. 이 공동체는 완벽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죄인들이 서로의 연약함을 짊어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용납하며, 말씀과 기도로 함께 지어져 가는 곳이다. 이것이 바로 ‘느린 사역’의 핵심이다.
이러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구체적인 지침이 성경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립보서 2:1-4). 바울의 이 권면은 효율성이나 성과가 아닌, 겸손과 자기 비움, 그리고 타인을 향한 구체적인 돌봄이 공동체의 심장임을 선언한다.
이제 한국 교회는 성장과 효율이라는 우상을 내려놓고, 한 사람의 신음 소리에 귀 기울이며, 인내와 사랑으로 관계를 엮어가는 ‘느린 사역’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그리스도의 현존은 화려한 예배나 행사가 아닌, 바로 이 느리고 불편하며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한 성도의 교제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고립의 시대를 향한 교회의 유일한 응답이다.
안타깝게도 현대 교회는 종종 이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효율성과 가시적 성과를 중시하는 현대 경영의 원리가 교회 운영에 무분별하게 도입되면서, 교회는 영적 친교(코이노니아)의 공동체이기보다 잘 짜인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서비스 기관처럼 변모했다. 주일의 짧은 만남과 형식적인 교제, 대형화된 익명성 속에서 성도들은 함께 있지만 외로운 ‘군중 속의 고독’을 경험한다.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서로 깊이 연결된 지체라는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나치 정권 아래서 고난받는 교회의 현실 속에서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저서 『성도의 공동생활』을 통해 기독교 공동체의 본질을 역설했다. 그는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공동체, 즉 ‘소원의 공동체’를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했다. 우리의 감정과 기대에 기반한 공동체는 반드시 실망하고 깨어지기 마련이다. 참된 기독교 공동체는 우리의 이상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영적 현실’이다. 이 공동체는 완벽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죄인들이 서로의 연약함을 짊어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용납하며, 말씀과 기도로 함께 지어져 가는 곳이다. 이것이 바로 ‘느린 사역’의 핵심이다.
이러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구체적인 지침이 성경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립보서 2:1-4). 바울의 이 권면은 효율성이나 성과가 아닌, 겸손과 자기 비움, 그리고 타인을 향한 구체적인 돌봄이 공동체의 심장임을 선언한다.
이제 한국 교회는 성장과 효율이라는 우상을 내려놓고, 한 사람의 신음 소리에 귀 기울이며, 인내와 사랑으로 관계를 엮어가는 ‘느린 사역’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그리스도의 현존은 화려한 예배나 행사가 아닌, 바로 이 느리고 불편하며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한 성도의 교제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고립의 시대를 향한 교회의 유일한 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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