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베르의 그림자, 공의와 긍휼의 저울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8-03 07:10
본문
인간은 판단하는 존재다. 경기장의 심판부터 법정의 판사, 그리고 익명의 댓글로 타인을 심판하는 소셜미디어 이용자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옳고 그름을 판정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의 판단은 종종 오류와 편견, 무지로 얼룩진다. 특히 오늘날 우리 사회는 긍휼 없는 정죄와 비판이 만연해 있다. 한번 잘못이 드러나면 회복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돌팔매질의 문화'가 팽배하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우리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 속 경감 자베르의 그림자를 본다.
자베르는 법과 원칙의 화신이다. 그에게 법은 절대적인 선이며, 죄인은 영원한 죄인일 뿐이다. 그는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낙인찍힌 장발장을 평생에 걸쳐 추격한다. 자베르의 세계에는 용서나 긍휼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의 정의는 차갑고 냉혹하며, 오직 심판만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나 자신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건 없이 살려준 장발장의 자비 앞에서, 그의 굳건했던 흑백논리의 세계는 송두리째 무너져 내린다. 그는 결국 자신이 평생 신봉했던 냉혹한 법의 심판을 스스로에게 내리며 센 강에 몸을 던진다. 자베르의 비극은 긍휼이 배제된 공의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파괴적인지를 웅변한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공의는 자베르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나님의 공의는 언제나 긍휼과 짝을 이룬다.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인을 사랑하시며, 심판을 선언하시지만 회개하고 돌아올 길을 열어두신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가장 극적으로 만나는 지점이다. 죄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져야 한다는 공의의 요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사랑의 열망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동시에 성취된 사건이다. 따라서 십자가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자베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타인의 죄와 허물을 마주할 때, 날카로운 정죄의 칼날을 휘두르기 전에 먼저 긍휼의 저울을 들어야 한다.
물론 이것이 죄를 용납하거나 불의에 침묵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분명히 죄를 죄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그 목적은 상대를 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회복과 구원에 있어야 한다. 마태복음 7장 1절에서 2절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죄인임을 기억한다면, 감히 타인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없을 것이다. 한국 교회와 성도들은 자베르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공의와 긍휼의 저울을 균형 있게 드는 성숙한 신앙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자베르는 법과 원칙의 화신이다. 그에게 법은 절대적인 선이며, 죄인은 영원한 죄인일 뿐이다. 그는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낙인찍힌 장발장을 평생에 걸쳐 추격한다. 자베르의 세계에는 용서나 긍휼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의 정의는 차갑고 냉혹하며, 오직 심판만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나 자신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건 없이 살려준 장발장의 자비 앞에서, 그의 굳건했던 흑백논리의 세계는 송두리째 무너져 내린다. 그는 결국 자신이 평생 신봉했던 냉혹한 법의 심판을 스스로에게 내리며 센 강에 몸을 던진다. 자베르의 비극은 긍휼이 배제된 공의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파괴적인지를 웅변한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공의는 자베르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나님의 공의는 언제나 긍휼과 짝을 이룬다.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인을 사랑하시며, 심판을 선언하시지만 회개하고 돌아올 길을 열어두신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가장 극적으로 만나는 지점이다. 죄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져야 한다는 공의의 요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사랑의 열망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동시에 성취된 사건이다. 따라서 십자가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자베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타인의 죄와 허물을 마주할 때, 날카로운 정죄의 칼날을 휘두르기 전에 먼저 긍휼의 저울을 들어야 한다.
물론 이것이 죄를 용납하거나 불의에 침묵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분명히 죄를 죄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그 목적은 상대를 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회복과 구원에 있어야 한다. 마태복음 7장 1절에서 2절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죄인임을 기억한다면, 감히 타인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없을 것이다. 한국 교회와 성도들은 자베르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공의와 긍휼의 저울을 균형 있게 드는 성숙한 신앙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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