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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우타의 눈물, '나그네'를 향한 교회의 두 가지 의무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8-01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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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령 세우타에 밀려든 5만 명의 이주민 사태는 국경의 의미와 인도주의의 한계를 동시에 시험대에 올렸다. 도시 기능은 마비되었고, 약탈과 혼란이 가중되는 현실 앞에서 '무조건적 환대'라는 이상은 힘을 잃고 있다. 반대로 '강력한 통제'만을 외치는 목소리는 절박한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이들의 고통을 외면한다. 이처럼 세상의 해법이 이념의 양극단에서 길을 잃을 때, 성경은 우리에게 균형 잡힌 원칙을 제시한다.

성경은 '나그네(sojourner)'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시기를,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출애굽기 22:21) 라고 하셨다. 이는 단순히 감상적인 동정이 아닌, 이스라엘 자신의 정체성에 뿌리내린 거룩한 의무였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최후의 심판 비유를 통해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다' (마태복음 25:35)는 것을 자신에게 한 것으로 여기시겠다며, 나그네 환대를 하나님 나라 백성의 핵심적인 표지로 삼으셨다.

그러나 성경은 동시에 질서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장에서 세상의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났으며,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통치자의 중요한 사명임을 분명히 했다. 무질서와 혼돈은 모든 구성원, 특히 가장 연약한 자들을 더 큰 고통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경을 지키고 법질서를 수호하려는 국가의 노력을 무조건적으로 정죄하는 것 또한 성경적이지 않다.

이 두 가지 원칙 사이의 긴장을 푸는 열쇠는 영국의 노예제 폐지 운동가 윌리엄 윌버포스의 생애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노예들의 비참한 현실에 깊이 공감하며 그들의 인권을 위해 평생을 바쳤지만, 그의 방법은 결코 사회 전복적인 혁명이 아니었다. 그는 의회 안에서 끈질긴 설득과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법과 제도를 바꾸어 나갔다. 즉, 긍휼이라는 뜨거운 심장과 질서라는 차가운 이성을 모두 사용하여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세우타의 비극 앞에서 한국 교회는 감상적 인도주의나 냉혹한 국가주의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한편으로, 고통받는 이주민들을 향한 구체적인 사랑과 지원을 실천해야 한다. 동시에, 이 문제가 야기하는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고 장기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도록 정부와 사회를 향해 지혜로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긍휼과 질서, 이 두 날개로 날 때 교회는 비로소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온전히 세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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