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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적 신앙, 도피가 아닌 책임의 근거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7-20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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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광장 예배에서 “전쟁과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는 이때 때가 가까운 줄 안다”는 기도가 울려 퍼졌다. 이는 단순한 현실 인식을 넘어,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향한 종말론적 신앙의 고백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서 ‘종말론’은 자칫 현실 도피적이거나 신비주의적인 경향으로 오해받기 쉬운, 조심스러운 주제가 되었다. 시한부 종말론의 광풍이 휩쓸고 간 상처가 여전히 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종말론적 신앙은 결코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나 도피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뜨거운 소망을 품고 살았다. 그 소망은 그들로 하여금 현실의 고난을 인내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동력이 되었다. 사도행전은 그들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사도행전 2:44-45)라고 증언한다. 그들의 나눔은 단순한 구제가 아니었다.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지금 여기에서’ 살아내는, 가장 강력하고도 구체적인 종말론적 신앙의 실천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울역 노숙인들을 향한 16년간의 꾸준한 섬김은, 한국 교회가 회복해야 할 건강한 종말 신앙의 모델을 제시한다. 광장의 노숙인들은 이 시대가 만들어낸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이다. 그들에게 빵과 복음을 전하는 행위는, 마지막 때에 양과 염소를 나누시는 주님의 심판 기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신앙적 결단이다. 야고보서 2장 15절부터 17절은 서슬 퍼렇게 경고한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따라서 ‘때가 가까웠다’는 인식은 우리를 무기력한 관망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치열한 사랑의 실천가로 이끌어야 한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신부의 가장 아름다운 단장은, 화려한 예복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는 거룩한 손수건이다. 한국 교회는 왜곡된 종말론의 잔재를 씻어내고, 역사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는 긴박함 속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책임적 사랑을 실천하는 ‘깨어 있는 신앙’을 회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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