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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라는 우상, 가이사 앞에 선 교회의 자기 성찰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6-17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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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상대를 굴욕시키는 검투사 경기’에 비유하며, 복음주의자들이 왜 그런 리더십에 매료되는지 묻는 유럽 칼럼니스트의 지적은 한국 교회에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는 단순히 한 정치인에 대한 평가를 넘어, 교회가 세상 권력과 맺는 관계의 본질을 성찰하게 하는 준엄한 계기다.

칼럼은 트럼프의 ‘위대한 미국’이 로마 제국과 같은 이교도적 힘의 논리에 기반한다고 분석한다. 이는 기독교적 가치인 섬김, 희생, 사랑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오직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군림하려는 욕망이다. 문제는 일부 교회가 이러한 세속적 힘의 논리를 분별없이 수용하고, 심지어 특정 정치 세력과의 결탁을 통해 교회의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유혹에 빠진다는 점이다. 이는 교회가 예언자적 사명을 포기하고,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는 위험한 길이다.

역사는 교회가 권력 앞에 어떻게 서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4세기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는 기독교 역사에서 교회의 영적 권위가 세속 권력 위에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이다. 390년, 데살로니가에서 시민들의 폭동에 분노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7천여 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소식을 들은 암브로시우스는 황제에게 공개적인 참회를 요구하며 성찬 참여를 금지했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던 황제는 결국 밀라노 대성당 앞에서 무릎을 꿇고 수개월간 눈물로 회개한 뒤에야 교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암브로시우스는 황제의 권력에 아부하여 교회의 안위를 도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며 황제조차도 그 아래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세상 권력을 향해 가져야 할 영적 권위의 본질이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0:42-45). 한국 교회는 세상의 ‘가이사’에게서 위대함을 찾으려는 헛된 시도를 멈추어야 한다. 교회의 참된 힘은 정치적 영향력이 아니라, 십자가의 섬김과 희생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능력에 있다. 권력이라는 우상 앞에 영적 분별력을 상실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아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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