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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와 정치의 우상: 지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5-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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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이 특정 정치 이데올로기나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기독교 문명 수호’라는 이름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뉴스는 심각한 신학적 경고음을 울린다. 특정 정치 지도자를 기독교의 수호자로 묘사하며 세속주의에 맞서는 투사로 영웅화하는 현상은, 복음의 초월성을 세속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키는 명백한 왜곡이다. 이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오해한 결과이자, 교회가 경계해야 할 가장 위험한 우상숭배의 한 형태이다.

서로마 제국이 고트족에 의해 함락된 5세기 초, 수많은 이교도는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전통 신들의 노여움을 사 멸망했다고 비난했다. 이 거대한 혼란과 비난 속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13년에 걸쳐 불후의 명작 『신국론(De Civitate Dei)』, 즉 ‘하나님의 도성’을 저술했다. 그는 이 책에서 역사를 관통하는 두 종류의 도성, 즉 ‘하나님의 도성(City of God)’과 ‘지상의 도성(City of Man)’이 존재함을 역설했다. 지상의 도성은 자기애(愛)와 세상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움직이지만, 하나님의 도성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그분의 영광을 추구하는 순례자들의 공동체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로마 제국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도성이 아니었다. 그것은 흥하고 쇠하는 지상의 도성일 뿐이며, 교회는 그 안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도성 백성들의 모임이다. 교회는 지상의 어떤 국가나 정치 체제와도 자신을 동일시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이러한 신학적 통찰은 오늘날 ‘기독교 민족주의’의 위험성을 정확히 겨눈다. 미국, 러시아, 헝가리 등지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지상의 도성을 하나님의 도성과 혼동하고, 국가의 번영과 안보를 교회의 지상 사명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교회의 사명은 특정 국가나 문명을 수호하는 데 있지 않다. 교회의 유일한 왕은 지상의 통치자가 아니라 하늘의 주권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께서 빌라도 앞에서 친히 증언하신 바와 같이, 그분의 나라는 이 세상의 방식과 원리로 작동하지 않는다.

성경은 분명히 증언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한복음 18:36). 그리스도의 나라가 세상의 군사력이나 정치적 권모술수로 세워지는 것이었다면, 주님은 십자가의 무력한 길을 택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교회가 정치적 힘을 추구하고 세상 권력과 야합하는 순간, 복음의 능력인 십자가를 스스로 부인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이러한 세속적 유혹 앞에서 명확한 신학적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애국과 신앙을 혼동해서는 안 되며, 특정 정파의 이익을 교회의 이름으로 옹호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천명했듯, 이 땅에 속한 순례자 공동체로서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할 책임이 있다. 지상의 도성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의 도성을 소망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교회의 참된 정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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