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거룩한 방파제’를 넘어, ‘진리의 등대’로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5-26 07:00
본문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거룩한방파제’와 연대하여 퀴어축제와 급진적 성교육에 공동 대응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다음 세대의 신앙과 가치관을 지키려는 한국 교회의 깊은 우려가 정치적 의제로 부상한 사건이다. ‘방파제’라는 표현은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는 세속적 성 이념의 공세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담고 있다. 실제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부정하고 가정을 해체하는 이념이 공교육의 영역까지 침투하는 현실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위기임이 분명하다.
교회는 마땅히 진리의 보루로서 시대의 악에 저항해야 한다. 특히 분별력이 미숙한 아이들이 검증되지 않은 이념의 실험 대상이 되는 것을 막는 것은 어른들의 신앙적, 사회적 책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연대하여 악한 영향력에 대한 ‘방파제’를 세우려는 노력은 정당하며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방파제’의 역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방파제는 파도를 막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구조물이다. 그것은 위험을 차단할 수는 있지만, 나아갈 길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교회의 궁극적인 사명은 단순히 세상의 죄를 막아서는 것을 넘어, 어두운 세상에 생명의 길을 비추는 데 있다. 방파제를 넘어 ‘등대’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는 헬레니즘 세계의 가장 중요한 항구로 들어오는 배들을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 100미터가 넘는 높이에서 밤새도록 타오르는 불빛은 짙은 어둠과 거친 풍랑 속에서 길을 잃은 배들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등대는 항구로 들어오려는 배들을 막아서는 방파제와는 그 기능과 목적이 다르다. 등대는 위험한 암초를 알려주고, 가장 안전한 길로 선명하게 인도하는 빛이다.
오늘날 세상은 성(性)과 정체성의 문제에 있어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교회는 단순히 ‘그 길은 위험하다’고 외치는 것을 넘어, ‘이 길이 생명의 길이다’라고 선포하며 진리의 빛을 비추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남성과 여성의 아름다운 연합, 거룩한 가정의 가치, 인간 존엄성의 참된 의미를 그 어느 때보다 더 밝고 매력적으로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다. 비판과 정죄의 언어만으로는 혼란에 빠진 영혼들을 생명의 항구로 인도할 수 없다.
따라서 ‘거룩한 방파제’를 세우는 노력과 함께, 어떻게 ‘진리의 등대’를 세울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교회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성경적 가치관을 깊이 심어주고, 문화와 예술을 통해 대안적인 기독교 세계관을 제시하며, 무엇보다 성도들의 삶을 통해 세상과 구별된 거룩함과 사랑을 증거해야 한다. 교회가 세상의 소란스러운 구호에 맞서는 방파제가 되는 동시에, 길 잃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환한 등대가 될 때, 비로소 시대를 향한 소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될 것이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골로새서 1:13-14)
교회는 마땅히 진리의 보루로서 시대의 악에 저항해야 한다. 특히 분별력이 미숙한 아이들이 검증되지 않은 이념의 실험 대상이 되는 것을 막는 것은 어른들의 신앙적, 사회적 책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연대하여 악한 영향력에 대한 ‘방파제’를 세우려는 노력은 정당하며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방파제’의 역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방파제는 파도를 막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구조물이다. 그것은 위험을 차단할 수는 있지만, 나아갈 길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교회의 궁극적인 사명은 단순히 세상의 죄를 막아서는 것을 넘어, 어두운 세상에 생명의 길을 비추는 데 있다. 방파제를 넘어 ‘등대’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는 헬레니즘 세계의 가장 중요한 항구로 들어오는 배들을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 100미터가 넘는 높이에서 밤새도록 타오르는 불빛은 짙은 어둠과 거친 풍랑 속에서 길을 잃은 배들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등대는 항구로 들어오려는 배들을 막아서는 방파제와는 그 기능과 목적이 다르다. 등대는 위험한 암초를 알려주고, 가장 안전한 길로 선명하게 인도하는 빛이다.
오늘날 세상은 성(性)과 정체성의 문제에 있어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교회는 단순히 ‘그 길은 위험하다’고 외치는 것을 넘어, ‘이 길이 생명의 길이다’라고 선포하며 진리의 빛을 비추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남성과 여성의 아름다운 연합, 거룩한 가정의 가치, 인간 존엄성의 참된 의미를 그 어느 때보다 더 밝고 매력적으로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다. 비판과 정죄의 언어만으로는 혼란에 빠진 영혼들을 생명의 항구로 인도할 수 없다.
따라서 ‘거룩한 방파제’를 세우는 노력과 함께, 어떻게 ‘진리의 등대’를 세울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교회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성경적 가치관을 깊이 심어주고, 문화와 예술을 통해 대안적인 기독교 세계관을 제시하며, 무엇보다 성도들의 삶을 통해 세상과 구별된 거룩함과 사랑을 증거해야 한다. 교회가 세상의 소란스러운 구호에 맞서는 방파제가 되는 동시에, 길 잃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환한 등대가 될 때, 비로소 시대를 향한 소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될 것이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골로새서 1: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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