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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나비] 공생하는 사회·나라를 만들자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4-02-0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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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장 큰 명절이자 한민족이 한 해의 시작을 기념하는 설날이 이번 2024년은 210일에 돌아온다. 설 명절은 음력 정월 초하룻날로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로 명명되기도 했으며, 다는 의미에서 새해의 새로움을 의미한다는 주장도 있다. 특별히 설 명절은 한국에서는 가족 모두가 모여 함께 음식을 나누며, 윗어른에게는 세배로서 예를 다하고, 아랫사람에게는 세배돈으로 사랑을 전하는 기쁨의 명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 세계적 불경기와 더불어 정치적 갈등 및 국제정세의 대립을 통해 더욱 몸과 마음의 고단함을 느끼는 시기가 되고 있으며, 이에 우리 샬롬나비는 사회에 행복을 주는 설날을 만들기 위해 정치권에, 국민 모두에게, 북한에게, 세계 내 대립의 현장에, 그리고 한국교회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1. 정치권은 갈등과 정쟁을 멈추고 상생의 정치를 이뤄내야 한다.

 

벌써 3년 차로 접어든 현 정부는 여전히 불통이라는 불만의 여론에 직면해 있으며, 이와 더불어 야당 역시 민생보다는 정쟁거리 생산과 당대표의 사법적 방탄의 모습만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이 정치권에 바라는 것은 국민의 행복과 더불어, 미래에 대한 밝은 희망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 정치권은 상호 비방과 이슈 거리 생성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과 정쟁 안에서 경제는 불황으로 신음하고 사법부는 그 어느 때보다 불신을 받고 있다.

 

국민이 선출한 정부라는 점에서 대통령과 여당은, 만약 많은 국민이 문제를 제기한다면, 이에 대한 책임 있는 행동을 시행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때때로 삶의 어려움 때문에 지나친 것을 요구하고, 생떼를 쓰는 이들이 나타나더라도 정부는 민의를 대변해야 한다는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그들의 아픔과 요구를 들어주고 그들을 위로해 주어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이태원참사의 유가족, 전장연의 시위 등 때로는 지나치게 감정적인 요구라 할지라도 대다수 국민은 아픔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에 대한 법의 빠른 집행보다는, 법은 어기지 않되 끝까지 설득하고 보듬는 모습을 원한다. 또한, 야당의 생떼를 통해 만들어진 사건이라 할지라도 빌미가 제공되었다는 점에서 성실하게 답변하고 이해시키려는 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결국 진실은 밝혀지게 되며, 진실의 승리를 믿는다면 현정부는 불통의 이미지를 벗어나 좀 더 화합하는 정치를 추구해주기 바란다.

 

야당 역시 현정부에 대한 근거 없는 흠집내기를 자제하고 당리당략을 위한 포퓰리즘 입법을 중지하고, 제발 민생의 어려움에 먼저 귀기울이고 공감적 정책을 개발하는 공당이 되어주길 바란다. 야당의 임무는 현정부에 대한 무조건적 비난도, 사법적 혐의를 받는 당대표에 대한 방패의 역할도 아니다. 야당의 임무는 여당과 동일한 정치인으로서 민의를 대변하고 그들의 아픔을 보듬는 정책의 마련이다. 부동산 정책의 수정, 세금 제도의 개선, 복지 사각 지대의 극복 등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현정부에 상생의 협력을 제공해야 한다.

 

설 연휴를 맞이하여 대한민국 정치권은 과거에 대한 분명한 반성과 더불어 상생과 희망의 정치를 시행해주기 바란다. 정치는 권력의 획득 이전에 민생과 상생이 먼저임을 정치권은 기억해야 한다.

2. 국민 모두는 자기 욕망의 절대화를 내려놓고 자유와 인권을 상호 인정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현재 갈등 공화국이 되었다. 이념, 경제적 지위, 성별, 세대 등, 무엇이든 이유를 달아서 자기의 욕망을 실현하려 하고 그것에 방해가 되면 무조건 싸잡아 혐오하고 매장시키려는 시도가 빈번하다. 예를 들어, 사회 내 위치와 관련하여 오직 자신들의 입장만을 주장하면서 청년층이라는 이름으로, 노년이라는 이름으로, 장년층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남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만을 위한 혜택을 주장하고 다른 이들의 아픔과 불편함은 외면하고 있다. 또한 이에 더불어 소위 말하는 ()’이라는 욕망과 욕구의 문제를 자유와 인권의 문제로 치장하여 앞서 언급한 사회의 갈등 안에 위치시키려는 성해방의 부정적 움직임 역시 함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소수자, 주변인, 경계인, 고통당하는 자의 규정은 결코 자신의 단순한 욕망과 욕구 실현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순히 자신의 이익만을 주장하는 이는 결코 존중받을 수 없으며, 자신의 이기적 욕망과 욕구만을 남들의 이목에 신경쓰지 않고 모두 실현하고 싶어하는 이는 결코 스스로를 소수자나 경계인이라 지칭할 수 없다.

 

나의 자유와 인권은 반드시 다른 이들의 자유와 인권을 인정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와 인권의 상호적 인정이 가능해질 때 대한민국은 혐오를 넘어 모두가 행복한 나라에 한 걸음 가까워질 것이다. 행복은 자기의 욕망과 욕구를 실현하는 것으로부터가 아니라, 다른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짊어질 때 가능하다. 다수자들이 소수자들에게 일방적으로 고통을 주는 상황도 문제이지만, 이와 더불어 자기 마음대로 스스로를 소수자라 칭하면서 다른 이들을 적대시하는 상황 역시 문제이다. 모두의 이기적 혐오 발언이 사라지고 서로 인정하는 새해가 되길 바래본다.

 

3. 북한 정권은 한 민족으로서의 통일 염원을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새해를 맞이하기 전부터 김정은 위원장 및 북한 정권의 수장들은 같은 민족으로서의 남한을 부정하고, 전쟁을 책동하는 성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한미일의 공조와 전쟁 억제 훈련을 핑계로 미사일 실험 발사 및 핵무기를 통한 협박을 하고 있으며, 남한 및 그에 관련된 호칭을 바꾸면서 한 민족으로서의 통일을 부정하는 발언들을 일삼고 있다. 민족의 개념을 무엇으로 정의하던지, 남한과 북한은 역사, 언어, 혈연 등 많은 부분에서 한 민족일 수밖에 없음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반만년의 긴 역사 동안 함께 고난과 전쟁을 겪었으며, 이 한반도 안에 공존해왔다는 점에서 남한과 북한은 하나이고 또한 반드시 평화 통일을 이룩해야 하는 두 주체이다.

 

민족의 명절 설을 맞이하여 북한의 위정자들은 어린아이 같은 떼를 쓰지 말고 냉혹한 현실과 분명한 한 민족 통일의 염원을 함께 바라보길 바란다. 같은 부모를 지닌 형제 자매가 비록 싸울 수는 있을지라도 한 가족임을 부정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남한과 북한 역시 한 민족으로서 서로의 하나 됨을 부정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설에는 미사일 발사, 망언, 핵실험 등의 망상이 아니라, 평화 통일, 비무장화, 비핵화의 기쁜 소식을 함께 나누며 냉정한 세계의 무대에서 상생의 기회를 만들어내길 기원한다.

4. 세계 곳곳의 전쟁 당사자들은 국제 사회 평화를 함께 노력해야 한다.

 

현재 전 세계는 전쟁과 화염에 신음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벌써 수년에 걸쳐 계속되고 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및 중동 국가들 사이의 상호 공격은 이미 통제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상태이다. 그 목적이 어디에 있던지, 혹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던지 물리적 폭력과 살상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국가들 사이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때로는 국가적 자존심의 문제로 벌이는 전쟁의 참상은 해당 국가 자체에도 큰 해악이 되며, 종교를 이유로 행하는 보복의 다짐들 역시 해당 종교 신념에 반대되는 행동일 뿐이다. 진정한 국가의 이익과 종교의 부흥은 오히려 서로를 내어주고 양보하는 것으로부터 가능해짐을 우리 모두는 기억해야 한다. 다른 이들의 것을 빼앗고, 다른 이들을 무력으로 제압하여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하게 될 때, 그 폭력과 폐해는 침략자 자신들에게 다시 돌아가 더 큰 고통으로 실현될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동방정교회라는 기독교 전통 안에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유대교와 이슬람 전통 안에 있는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 모두, 자신들이 종교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그 종교가 자신들의 삶에서 정말 중요하다면 가장 먼저 이 물리적 폭력과 전쟁의 살상부터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무조건적 용서가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억울한 희생자와 민간인들의 피해를 줄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며, 전쟁을 중재하고자 노력하는 다양한 접근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원한은 더 큰 원한을 사고, 복수는 더 큰 복수를 불러와 모든 이들이 절멸하는 결과를 불러올 뿐이다. 진정한 인간으로서, 진정한 종교인으로서, 진정한 생명으로서 전쟁을 멈추고 거기서 발생한 서로의 깊은 고통과 상처에 먼저 사과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주기 바란다.

 

5. 한국교회와 신자들은 고통당하는 자들의 아픔을 더욱 돌보자.

 

앞서 언급한 정치권의 문제, 사회 내 갈등, 북한과의 대립, 전 세계적 전쟁의 상황 등은 그 어느 때보다 대한민국의 많은 부분에서 부정적인 결과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특히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이들이 많은 요즘이다. 상당수의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반종교적이거나 무속적인 관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로맨스 스캠(Romance Scam), 전세 사기 등 일반인들에게 정신적, 경제적 파탄을 던지는 사기꾼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나타나는 작금의 상황 역시 이러한 반종교적, 무속적 생각이 만연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상처투성이와 갈등의 한복판에 서 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대해 무조건적인 응답과 돌봄을 시행해야 한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아닐지라도, 그들이 우리를 무시하고 거부할지라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들에게 나아가 그들을 돌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란 아무도 할 수 없었던 십자가를 감내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아무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희생과 사랑을 수행해야 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비록 교회가 그 어떤 책임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받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우리 이웃의 아픔과 고통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단순한 타자가 아니라 우리 곁에 함께 머물며,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웃이며, 바로 이것이 교회가 아무런 조건 없이 시대의 아픔과 고통에 응답하고 돌봄을 베풀어야 하는 근거이다.

 

6. 고향교회 방문하여 옛 신앙을 새롭게하고 신앙의 교제를 나누고 격려하자.

 

한국교회는 매 명절 마다 고향교회를 방문하여 헌금하고 선물을 나누고, 신앙 격려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어가고 있다.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캠페인이다.

 

설 명절은 늘 우리에게 가족과 이웃의 기쁨과 행복을 주어왔다. 그리고 시대와 상황이 그 어떠한 어려움을 내어준다 할지라도 우리는 설 명절만큼은 서로 힘을 모아 우리가 누려왔던 기쁨과 행복을 잃지 않고 옆에 있는 모두와 함께 누려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25:40), 한국교회 신자들은 자신들이 신앙을 배워온 고향교회를 잊지 말고 방문하여 교제를 나누고 격려해야 한다. 우리 모두 기쁨과 행복을 함께 나누는 설 명절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202428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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