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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나비]백선엽 장군 명예회복과 동상 건립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3-08-21 17:41

본문

백선엽은 6.25전쟁시 다부동 전투에서 국가를 사수했고 한미동맹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했다. 

국가보훈부가 백선엽 안장 기록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 문구 삭제 추진은 당연한 조치다.

 

백선엽(1920~2020) 장군 동상이 세워졌다백선엽 추모 3주기를 맞이하여 그의 동상이 6·25전쟁 때 그가 전공을 세운 경북 칠곡군 다부동에 건립됐다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건곤일척(乾坤一擲)에서 구한 백선엽 장군의 동상 제막식이 지난 2023년 7월 5일 당시 다부동 전투의 격전지인 경북 칠곡에서 있었다백 장군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나라를 지켰다는 의미를 담아 동상이 360도 회전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고 한다백선엽장군동상건립추진위원회가 주도해 국민 성금을 모으고국가보훈부와 경북도 등 후원을 받아 5억원을 들여 제작했다고 한다1950년 다부동 전투가 벌어진 지 73년 만에 승리한 영웅을 현장에 모신 것이다국방부 장관과 한미연합사령관한미 양국 주요 인사 등 2000여 명이 참석했다.

그런데 지난 문재인 정권은 그를 친일로 매도하고 홀대했다양식있는 정상적인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윤석열 정권 들어와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지켜낸 영웅을 제대로 평가하고 추모하게 된 것이다6.25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인해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왔을 때 백선엽이 이끄는 국군 1사단이 북한군 3개 사단을 물리치지 않았다면우리나라에서의 인천상륙작전이나 북진(北進)은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다늦었지만 국가를 위기에 구원한 영웅에 대한 합당한 예우라 할 것이다그 동안 여러 민간단체들이 개별적으로 백선엽 추모식을 진행해왔으나올해는 육군 주관으로 통합 추모식이 열려 격이 높아졌다국가보훈부와 육군은 이날 오후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백 장군 동상 제막식과 함께 3주기 추모식을 잇달아 진행했다샬롬나비는 백선엽 장군이 서거(逝去)후 국가 차원에서 예우를 받게 된 것을 환영하고 그 분의 명예회복은 당연지사로 여기면서 다음같이 천명하고자 한다.

 

1. 백선엽의 다부동 전투는 오늘의 선진 자유 대한민국을 있게 했다.

1950년 기습남침한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대한민국을 유린했다당시 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대한민국은 그대로 밀렸고 결국 낙동강까지 밀렸다낙동강 전선이 무너진다면 대한민국은 멸망하는 것이고한반도는 그대로 공산화되는 것이었다.

당시 8월 3일부터 29일까지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를 중심으로 숲데미산(이하 수암산으로 통칭및 유학산 일대에서 대한민국 국군과 조선인민군 사이에서 치열한 교전이 시작됐다낙동강 전선의 요충지인 다부동을 백선엽 준장 등이 이끄는 국군 제1사단과 미군 2개 연대가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 지켜냈다.

만일 당시 백 장군이 다부동을 지켜내지 못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을 것이다백 장군은 이후 북진해 가장 먼저 평양에 입성했고, 1·4 후퇴 뒤에도 서울을 최선봉에서 탈환했다휴전회담 대표를 지내고 한국군 최초로 대장에 올라 두 차례 육군참모총장을 맡으며 군을 재건했다물론 다함께 피를 흘린 대한민국과 우방 미군의 희생도 큰 몫을 했다우리는 백 장군의 탁월한 리더십을 기억하고 그를 승전영웅으로 추모해야 한다.

 

2. 백선엽은 다부동 전투에서 자신이 앞장 서서 적과 싸우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북한군의 공세에 밀려 부하들이 후퇴하려 하자 백 장군은 우리가 밀리면 나라도 끝장이다내가 앞장서겠다내가 물러서면 너희가 나를 쏴라고 했다그가 권총을 뽑고 앞장서자 부하들이 적진으로 돌격해 빼앗긴 고지를 탈환했다백 장군은 다부동 전투에서 공포에 질려 후퇴하는 부하들에 앞장서 고지를 탈환함으로써 희생과 헌신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위기에서 책임을 지고 앞장서는 그의 리더십이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전투에서의 공적을 자신에게 돌리기 보다는 부하들에게 돌리는 모습에 대해 이번 추모식에서 백 장군의 장녀 백남희 여사는 아버지는 생전에 최초 4성장군의 명예나 훈장 등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희생된 분들과 국민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회고했다.

 

3. 백선엽의 6.25전쟁을 통한 혁혁한 승전의 공적이 기억되어야 한다.

백선엽은 다부동 전투 외에도 평양 최초 점령서울 재탈환춘계 공세 방어동부 휴전선 북상 등 다수의 작전을 지휘했다. 1950년 10월 백 장군이 지휘하던 국군 제1사단은 평양탈환 작전에서 중요한 도로와 요충지를 점령해 제일 먼저 평양에 입성하는 부대가 되었다정전협정 체결 1개월 전인 1953년 6월 금성지구 돌출부 전투에서는 미8군사령관 테일러 장군의 요청으로 육군 참모총장으로서 전략적 방향을 설정하며 직접 참전하여 중공군의 금성지구 공격을 저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6.25전쟁 과정에서 대한민국을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방어하여 지킴으로써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놓았다백 장군은 6.25 전쟁 중에 제7대 육군참모총장과 전쟁 후에 10대 참모총장과 제4대 합동참모의장으로 봉직했으며, 2020년 100세를 일기로 숨을 거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창군(創軍)의 주역인 백선엽은 그 어떤 호칭보다도 군인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셨던 진정한 군인이었고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서 조국을 구한 최고의 전쟁영웅이었다.

 

4. 백선엽은 현역시 그리고 예비역에서 한평생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려 노력했다.

백선엽장군이 미 제27연대장 존 마이켈리스 대령에게 같이 공격합시다라고 한 말과 1951년 2월 맥아더 장군에게 “we go together” 라고 한 말은 오늘날 한미동맹의 의미와 가치를 나타내는 상징적 구호가 되었다그는 휴전회담 대표를 지내고 한국군 최초로 대장에 올라 두 차례 육군참모총장을 맡으며 군을 재건했다미군은 백 장군을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한국군 장교’ ‘최상의 야전 사령관이라 불렀다주한미군사령관들은 취임하면 백 장군을 찾아 전입신고를 했다미군은 백 장군을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한국군 장교’ ‘최상의 야전 사령관이라 불렀다주한미군사령관들은 취임하면 백 장군을 찾아 전입신고를 했다.

주한미군 사령관은 이·취임식 때마다 존경하는 백선엽 장군으로 시작하는 게 전통이 되었다현재 미 2사단 훈련평가원실 건물 이름이 '백선엽관'이다또한 미군 장성진급자 모임인 캡스톤 그룹(capstone group)이 한국에 오면 백선엽을 만나는 게 필수코스였다현재도 백선엽의 6·25전쟁 경험담 육성녹음은 미국 국립보병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6·25전쟁 회고록 군과 나는 미군 주요 군사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백선엽은 2013년에는 미8군 명예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2016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미8군 사령관 이?취임식에 초대되었다이것은 한미동맹의 상징이 백선엽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한미동맹은 지난 70년 간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를 지탱해온 소중한 가치이다백선엽의 존재는 이러한 한미동맹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5. 진영논리에서 벗어난 국가백년대계관점에서 백선엽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 이뤄져야 한다.

백선엽은 과거 만주에서 간도 특설대에 근무했다이 특설대는 당시 독립군을 토벌하는 목적으로 일제가 만들었다백선엽은 자서전에서 간도 특설대 복무와 관련하여 우리가 전력(全力)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이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백선엽을 독립군 토벌 친일파라고 매도했다간도특설대에 복무했다는 이유였지만 당시엔 만주에 독립군이 없었다는 게 정설이다이를 근거로 백선엽은 한국전쟁에서의 혁혁한 전공에도 불구하고 친일파가 됐다.

우리는 백선엽이 간도 특설대에서 근무했다해도 그것을 가지고 그의 삶 전체를 친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이후 백선엽은 한국전쟁에서 영웅적인 전투로 나라를 살렸고굳건한 한미동맹을 이뤘다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하다흑백논리로 무조건 친일파로 매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이제 건립된 백선엽 동상을 통해 우리는 자유와 동맹의 확고한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다시 한번 국가를 위해 희생한 모든 분들의 노고를 기리는 것이 필요하다.

 

6. 문재인 정권은 그를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매도하고 서울현충원 아닌 대전현충원에 안장했다

백선엽이 100세로 별세하자 미 백악관과 국무부전 주한미군사령관들은 모두 애도(哀悼메시지를 냈고 한국의 조지 워싱턴이라고 추앙했다시민분향소엔 수만명의 시민이 장대비를 맞으며 조문했다하지만 당시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는 조문은 커녕 애도 메시지도 내지 않았다그가 바라던 6·25 참전 12만명의 전우가 묻힌 서울 현충원 아닌 대전 현충원에 안장했다보훈처는 장례 다음 날 그를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고 낙인찍었다백선엽의 명예회복은 문 정권이 끝나고 윤석열 정권에야 이뤄졌다백선엽 동상 제막식에선 다부동에서 포탄·식량 등을 실어 나른 민간인 지게 부대원들도 함께 조명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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