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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팔렌의 유령과 ‘값싼 평화’의 유혹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10-02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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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베스트팔렌 평화상을 수상한다는 소식은 단순한 논란을 넘어, 현대 사회가 ‘평화’라는 가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은 유럽을 피로 물들인 30년간의 종교 전쟁을 종식시킨 역사적 이정표다. 그러나 이 조약이 가져온 평화는 신앙의 화합이 아닌 정치적 타협이었으며, 진리의 일치가 아닌 주권의 분리를 통해 이룩된 것이었다. 즉, 갈등의 ‘관리’에 성공했을 뿐, 갈등의 ‘해소’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

NATO의 평화상 수상 논리 또한 이와 유사하다. ‘전쟁 억지력’을 통해 유럽의 평화를 유지했다는 것이 주된 공로다. 이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고대 로마의 군사적 격언에 충실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는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같은 평화이며,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잠재적 적대감을 전제로 유지되는 ‘차가운 평화’일 뿐이다. 성경이 말하는 ‘샬롬’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Absence of war)를 넘어, 정의와 공의, 사랑과 신뢰가 가득한 전인격적이고 공동체적인 온전함(Presence of wholeness)을 의미한다.

20세기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나치 정권 하에서 교회가 값싼 은혜(cheap grace)에 안주하고 있음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회개 없는 용서, 제자도 없는 구원을 외치는 것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의와 화해의 노력 없이 힘의 균형에만 의존하는 평화는 ‘값싼 평화(cheap peace)’에 불과하다. 진정한 평화는 십자가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서야 이 땅에 주어졌다.

교회는 세상의 정치적 현실을 외면할 수 없으나, 세상의 논리에 포섭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이 ‘값싼 평화’에 만족하고 스스로를 기만할 때, 교회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선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평강은 인간의 전략이나 힘의 논리를 초월하여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유일한 능력이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7)

베스트팔렌의 유령이 떠도는 유럽의 한복판에서, 교회는 세상의 평화상이 아닌 하나님의 평강을 증언하는 파수꾼으로 굳건히 서야 한다. 그것이 바로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의 마땅한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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