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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르의 법과 발장의 정의, 마리 카르멘 사건에 답하다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10-01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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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드리드에서 71년간 살아온 집에서 87세 노파 마리 카르멘이 쫓겨났다. 법적 절차는 합법적이었을지 모르나, 그 광경을 지켜보는 모든 이의 마음속에는 ‘이것이 과연 정의로운가’라는 무거운 질문이 메아리쳤다. 이 사건은 현대 사회가 떠받드는 법치주의의 차가운 민낯과 성경이 말하는 따뜻한 공의 사이의 깊은 균열을 드러내는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현대 법체계는 종종 절차적 정당성을 최종적 정의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법의 조문이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의 윤리를 외면할 때, 법은 정의의 도구가 아닌 폭력의 명분이 될 수 있다. 성경은 처음부터 법(토라)을 단순한 규범의 집합이 아닌, 언약 공동체가 하나님의 성품인 ‘헤세드(인자)’와 ‘체다카(공의)’를 실천하며 살아가도록 돕는 생명의 길로 제시했다. 선지자들은 끊임없이 법의 이름으로 가난한 자와 과부, 고아를 억압하는 지도자들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다. 이는 법의 문자보다 그 정신, 즉 사랑과 자비의 실천이 우선함을 천명한 것이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은 이 딜레마를 극적으로 형상화한다. 자베르 경감은 법의 화신이다. 그에게 법은 한 치의 오차도, 한 톨의 자비도 허용되지 않는 절대적 원칙이다. 그는 빵 한 조각을 훔친 장발장을 평생 추격하며 자신의 법적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조차 자신을 용서하고 놓아주는 장발장의 자비로운 정의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그의 세계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법을 초월하는 사랑과 구원의 논리 앞에서 그는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자베르의 비극은 자비가 제거된 법이 얼마나 비인간적이며 파괴적인지를 보여주는 문학적 증언이다.

마리 카르멘의 눈물은 오늘날 우리 사회와 교회에 묻고 있다. 우리는 자베르의 길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장발장의 길을 따를 것인가. 재산권이라는 합법적 권리가 한 인간의 71년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교회는 세상의 법정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법정, 즉 긍휼과 정의가 함께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선포하고 실천해야 할 사명이 있다. 법의 칼날이 연약한 자들을 향할 때, 그들 편에 서서 긍휼을 외치는 것이 교회의 예언자적 역할이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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