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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둑의 첫 균열, 작은 타협이라는 이름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8-07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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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변절과 사회의 도덕적 방황, 이 두 현상은 서로 다른 영역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는 하나로 연결된다. 바로 ‘사소한 타협’이라는 이름의 균열이다. 브루스 배런이 지적했듯, 한때 신념을 외치던 정치인이 권력과 명예를 위해 자신의 말을 뒤집는 과정은 거대한 부패가 아닌, 재선이라는 현실적 목표 앞에서의 작은 양보에서 시작된다. 이는 마치 거대한 둑을 무너뜨리는 보이지 않는 실금과 같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 틈으로 세속의 가치관이라는 탁류가 스며들고, 결국 신념의 제방 전체를 허물어 버린다.

영국 법원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사춘기 차단제 임상시험을 허가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의 선택과 인권을 존중한다는 그럴듯한 명분 아래, 창조 질서라는 절대적 기준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성별이라는 타고난 정체성마저 개인의 주관적 감정에 따라 변경 가능한 선택지로 여기는 사소한 타협이, 결국 다음 세대의 몸과 영혼을 돌이킬 수 없는 실험의 제물로 내모는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이는 진리가 아닌 시대정신과의 타협이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보여주는 비극적 예시다.

영국의 극작가 로버트 볼트의 희곡 ‘사계절의 사나이(A Man for All Seasons)’에서 주인공 토머스 모어는 헨리 8세의 이혼과 영국 국교회 수장 선언을 지지하는 서약을 거부한다. 주변인들은 그에게 신념은 마음속에 간직한 채 형식적으로만 서명하라고, 그저 ‘말’ 몇 마디일 뿐이라고 회유한다. 그러나 모어는 단호히 말한다. “서약의 말들은 단지 ‘말’이 아니오. 우리가 그것으로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붙들어 매는 것이오.” 그는 작은 타협이 영혼의 전부를 내어주는 것임을 알았기에 죽음을 택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수많은 타협의 요구 앞에 서 있다. 세상의 박수를 받기 위해, 혹은 비난을 피하기 위해 복음의 본질을 희석시키라는 유혹은 거세다. 그러나 작은 타협은 결국 모든 것을 잃게 하는 첫걸음이다. 교회는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조류가 아니라, 거친 파도 속에서도 길을 밝히는 등대여야 한다. 진리 위에서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교회의 견고함만이 이 혼탁한 시대를 구원할 유일한 소망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단호히 묻는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라디아서 1:10). 한국 교회는 이 질문 앞에 정직하게 응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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