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의 야성을 잃고 죄악에 침묵하는 교회 > 사설 > 한국교회공보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사설

HOME  >  오피니언  >  사설

도전의 야성을 잃고 죄악에 침묵하는 교회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7-13 07:10

본문

광야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세례 요한이 외쳤던 회개의 선포와, 사도 바울이 로마를 향해 나아가며 불태웠던 복음의 열정은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낯선 풍경이 되었다. 한때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야성을 지녔던 교회는 이제 안락한 성공에 취해 더 큰 도전을 망설이고, 공동체 내부의 죄악 앞에서는 비겁한 침묵으로 일관하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전락하고 있다.

수영선수 마크 스피츠는 이미 올림픽 금메달 2개를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4년 뒤 7관왕이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를 향해 자신을 던졌다. 세상의 기준으로도 성공한 이가 보여준 끝없는 도전 정신은, ‘이만하면 되었다’는 안일함에 빠져 십자가의 길이라는 본질적 소명을 외면하는 오늘날의 신앙인들에게 깊은 부끄러움을 안겨준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 채, 하나님 나라를 향한 거룩한 모험을 포기하고 현상 유지에 급급하고 있다.

이러한 영적 무기력은 필연적으로 교회의 자정 능력 상실로 이어진다. 교회 내 성폭력과 같은 참담한 범죄가 발생했을 때, 공동체는 진리와 정의의 칼을 빼 들기보다 ‘신사 협정’이라는 이름 아래 가해자를 비호하고 피해자의 신음 소리를 억압한다. 이는 단순히 몇몇 개인의 도덕적 해이를 넘어, 교회의 명예라는 우상을 하나님의 공의보다 앞세우는 심각한 신학적 파탄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교회가 나치의 광기에 침묵하며 ‘값싼 은혜’를 정당화했을 때, 디트리히 본회퍼는 “미친 운전사가 모는 차에 치인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것만이 교회의 역할이 아니라, 운전사를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고 외쳤다. 그의 외침은 오늘날 내부의 죄악을 직시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운전대를 악에게 내어준 한국 교회의 심장을 꿰뚫는 예언적 경고다.

이제 한국 교회는 다시금 광야의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안락한 울타리를 넘어 세상의 조롱을 감수하며 더 높은 부르심을 향해 도전하는 믿음의 용기가 필요하다. 동시에 우리 안에 도사린 죄악의 실체를 직시하고, 그 뿌리를 단호히 도려내는 정의의 칼날을 세워야 한다. 교회의 참된 영광은 금빛 십자가나 웅장한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거룩한 책무를 온전히 감당할 때 비로소 회복될 것이다.
기사 공유하기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