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 교회의 세 가지 얼굴: 공의, 긍휼, 그리고 소명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7-11 07:10
본문
오늘 우리에게 당도한 세 편의 소식은 각기 다른 대륙에서 벌어진 무관한 사건처럼 보인다. 한국의 한 시골 교회에서 벌어진 해묵은 갈등과 재판의 혼란, 스페인 남부의 산야를 집어삼킨 비극적인 산불, 그리고 콜롬비아에서 한 기독교인이 교육 수장으로 임명된 일. 그러나 이 편린들을 모아보면, 오늘날 세상 속에서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 또 서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세 개의 거울이 된다.
첫째는 '내부의 공의'를 비추는 거울이다. 노회와 총회재판국의 판결이 엇갈리며 진실 공방으로 번진 시산교회 사태는 한국 교회의 사법적 권위와 신뢰가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되었는지를 드러낸다. 세상의 법정보다 더 높은 영적 권위와 도덕성을 지녀야 할 교회의 재판이 사실관계 확정에서조차 일관성을 잃고 표류하는 모습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 이전에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어두워지고 부패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교회의 가장 근원적인 사명은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며, 그 진리는 교회 내부의 질서와 공의를 통해 가장 먼저 구현되어야 한다.
둘째는 '세상을 향한 긍휼'을 비추는 거울이다.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산불은 인간의 연약함과 자연의 무서운 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실감케 한다. 모든 것을 잃고 슬픔에 잠긴 이들을 위해 현지 목회자가 전한 기도의 요청은, 교회가 세상의 고통에 동참하며 중보하는 제사장적 사명을 감당해야 함을 일깨운다. 영국의 설교가 찰스 스펄전은 “고통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이끄는 검은 옷의 천사”라고 말했다. 교회는 바로 그 고통의 현장에서 함께 울며,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는 천사의 손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세상의 신음 소리에 응답하는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이다.
셋째는 '공적 영역에서의 소명'을 비추는 거울이다. 콜롬비아에서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교육부 장관에 임명된 것은, 기독교적 가치를 공적 영역에서 실현할 수 있는 귀한 기회이자 무거운 책임이다. 이는 마치 18세기 영국에서 노예제 폐지를 위해 평생을 바쳤던 윌리엄 윌버포스의 소명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신앙은 개인의 경건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의 가장 깊은 죄악에 맞서 싸우는 정의와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졌다. 기독교인의 사회적 진출은 단지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그 자리를 통해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결국 이 세 가지 모습은 별개가 아니다. 내부의 공의를 바로 세우지 못한 교회는 세상을 향한 긍휼의 진정성을 의심받게 되며, 공적 소명을 감당할 자격을 상실한다. 미가 선지자의 외침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한국 교회는 먼저 우리 안의 재판석을 정결하게 하여 '정의를 행하고', 불타는 세상의 아픔을 끌어안고 '인자를 사랑하며', 주어진 사회적 책임을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본연의 모습을 회복해야 할 때다.
첫째는 '내부의 공의'를 비추는 거울이다. 노회와 총회재판국의 판결이 엇갈리며 진실 공방으로 번진 시산교회 사태는 한국 교회의 사법적 권위와 신뢰가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되었는지를 드러낸다. 세상의 법정보다 더 높은 영적 권위와 도덕성을 지녀야 할 교회의 재판이 사실관계 확정에서조차 일관성을 잃고 표류하는 모습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 이전에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어두워지고 부패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교회의 가장 근원적인 사명은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며, 그 진리는 교회 내부의 질서와 공의를 통해 가장 먼저 구현되어야 한다.
둘째는 '세상을 향한 긍휼'을 비추는 거울이다.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산불은 인간의 연약함과 자연의 무서운 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실감케 한다. 모든 것을 잃고 슬픔에 잠긴 이들을 위해 현지 목회자가 전한 기도의 요청은, 교회가 세상의 고통에 동참하며 중보하는 제사장적 사명을 감당해야 함을 일깨운다. 영국의 설교가 찰스 스펄전은 “고통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이끄는 검은 옷의 천사”라고 말했다. 교회는 바로 그 고통의 현장에서 함께 울며,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는 천사의 손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세상의 신음 소리에 응답하는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이다.
셋째는 '공적 영역에서의 소명'을 비추는 거울이다. 콜롬비아에서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교육부 장관에 임명된 것은, 기독교적 가치를 공적 영역에서 실현할 수 있는 귀한 기회이자 무거운 책임이다. 이는 마치 18세기 영국에서 노예제 폐지를 위해 평생을 바쳤던 윌리엄 윌버포스의 소명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신앙은 개인의 경건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의 가장 깊은 죄악에 맞서 싸우는 정의와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졌다. 기독교인의 사회적 진출은 단지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그 자리를 통해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결국 이 세 가지 모습은 별개가 아니다. 내부의 공의를 바로 세우지 못한 교회는 세상을 향한 긍휼의 진정성을 의심받게 되며, 공적 소명을 감당할 자격을 상실한다. 미가 선지자의 외침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한국 교회는 먼저 우리 안의 재판석을 정결하게 하여 '정의를 행하고', 불타는 세상의 아픔을 끌어안고 '인자를 사랑하며', 주어진 사회적 책임을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본연의 모습을 회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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