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의 피 위에 선 교회여, 다시 깨어날 때다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7-09 07:10
본문
나이지리아의 굳건한 신앙인들이 복음의 최전선에서 실종되고, 유럽의 경기장에서는 십자가를 그리는 손길이 조롱과 의심의 대상이 되는 시대다. 영국 의회에서는 성경적 진리를 가르치는 부모와 목회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려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 개별적인 사건들은 각기 다른 대륙에서 벌어진 파편적 현상이 아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왕으로 고백하는 교회를 향한 세상의 적대감이 물리적 박해와 이념적 억압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동시적으로 발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거대한 시대적 징후다.
초대교회 시절,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캅은 로마 총독 앞에서 황제 숭배를 거부했다. 총독이 “그리스도를 저주하라. 그러면 살려주겠다”고 회유했을 때, 노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86년간 그분을 섬겨왔지만, 그분은 한 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하신 적이 없소. 그런데 내가 어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겠소?” 그의 대답은 타협이 아닌 순교로 이어졌다. 폴리캅의 순교는 패배가 아니었다. 그의 피는 서머나 교회를 더욱 굳건하게 세우는 주춧돌이 되었고, 후대 교회에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증언하는 영원한 이정표가 되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는 나이지리아 성도들의 고난을 먼 나라의 이야기로 여기고, 유럽의 세속화를 ‘그들만의 문제’로 치부하며 안일함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안정이라는 달콤한 잠에 취해, 교회를 향해 다가오는 세상의 차가운 칼날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예배당이나 더 많은 프로그램이 아니다. 폴리캅과 같이 세상의 위협 앞에서 “내가 어찌 나의 왕을 모독하리요”라고 담대히 외칠 수 있는 순결한 믿음의 회복이다.
교회는 세상의 가치와 타협하여 안락을 구하는 이익 집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워진 진리의 기둥이자 터전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안일의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다가오는 영적 전쟁 앞에서 신학적 갑옷을 단단히 입고, 성경적 진리의 검을 날카롭게 갈아야 한다. 나이지리아에서 피 흘리는 형제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유럽에서 신앙의 자유를 위협받는 이들과 연대하며, 우리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선포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역사는 증언한다. 교회는 박해의 불길 속에서 언제나 더욱 정결한 모습으로 타올랐다.
초대교회 시절,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캅은 로마 총독 앞에서 황제 숭배를 거부했다. 총독이 “그리스도를 저주하라. 그러면 살려주겠다”고 회유했을 때, 노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86년간 그분을 섬겨왔지만, 그분은 한 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하신 적이 없소. 그런데 내가 어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겠소?” 그의 대답은 타협이 아닌 순교로 이어졌다. 폴리캅의 순교는 패배가 아니었다. 그의 피는 서머나 교회를 더욱 굳건하게 세우는 주춧돌이 되었고, 후대 교회에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증언하는 영원한 이정표가 되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는 나이지리아 성도들의 고난을 먼 나라의 이야기로 여기고, 유럽의 세속화를 ‘그들만의 문제’로 치부하며 안일함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안정이라는 달콤한 잠에 취해, 교회를 향해 다가오는 세상의 차가운 칼날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예배당이나 더 많은 프로그램이 아니다. 폴리캅과 같이 세상의 위협 앞에서 “내가 어찌 나의 왕을 모독하리요”라고 담대히 외칠 수 있는 순결한 믿음의 회복이다.
교회는 세상의 가치와 타협하여 안락을 구하는 이익 집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워진 진리의 기둥이자 터전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안일의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다가오는 영적 전쟁 앞에서 신학적 갑옷을 단단히 입고, 성경적 진리의 검을 날카롭게 갈아야 한다. 나이지리아에서 피 흘리는 형제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유럽에서 신앙의 자유를 위협받는 이들과 연대하며, 우리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선포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역사는 증언한다. 교회는 박해의 불길 속에서 언제나 더욱 정결한 모습으로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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