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여, 세상의 위대함이 아닌 거룩한 낮아짐을 추구하라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6-17 07:10
본문
세계는 지금 ‘위대함’이라는 구호 아래 거대한 힘의 각축을 벌이고 있다. 강한 국가, 강력한 리더십이 시대의 유일한 해답인 것처럼 여겨지는 풍조 속에서, 교회는 종종 세상의 방식을 좇아 힘을 갈망하는 유혹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오늘의 소식들은 교회의 참된 위대함이 어디에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정치적 힘을 통해 ‘위대한 미국’을 재건하려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상대를 굴복시켜 승리를 쟁취하는 로마 제국의 투기장과 같은 논리다. 힘이 곧 정의가 되고, 굴욕을 안기는 것이 영광으로 치부되는 세상의 방식이다. 그러나 바로 그 시간, 스페인 전역에서는 수많은 성도가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의 깃발 아래, 그들은 국가와 사회의 죄를 통회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다. 또한 한국의 한 지역에서는 낯선 이주민들을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로 세우고, 그들을 다시 세계를 향한 선교사로 파송하려는 거룩한 연합이 시작되었다. 경기동부KWMA의 출범은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이들을 복음의 중심으로 초대하는 ‘거룩한 징검다리’의 시작이다.
이 상반된 풍경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교회의 영광은 어디에 있는가? 18세기 영국, 노예무역은 국가 경제의 심장과도 같았다. 그것을 폐지하는 것은 영국의 ‘위대함’을 스스로 허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윌리엄 윌버포스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믿음 하나로 수십 년간 외로운 싸움을 계속했다. 그는 정치적 권모술수가 아닌, 동료 의원들의 양심에 호소하고 끈질긴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마침내 1807년, 노예무역 폐지 법안이 통과되던 날 의회는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교회의 참된 위대함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선포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27-29). 한국 교회는 세상의 ‘위대함’을 향한 미성숙한 투쟁을 멈추고,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되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야 한다. 이주민의 발을 씻기고, 분열된 사회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작은 몸짓이야말로 이 시대를 향한 교회의 가장 강력한 선언이 될 것이다.
한쪽에서는 정치적 힘을 통해 ‘위대한 미국’을 재건하려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상대를 굴복시켜 승리를 쟁취하는 로마 제국의 투기장과 같은 논리다. 힘이 곧 정의가 되고, 굴욕을 안기는 것이 영광으로 치부되는 세상의 방식이다. 그러나 바로 그 시간, 스페인 전역에서는 수많은 성도가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의 깃발 아래, 그들은 국가와 사회의 죄를 통회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다. 또한 한국의 한 지역에서는 낯선 이주민들을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로 세우고, 그들을 다시 세계를 향한 선교사로 파송하려는 거룩한 연합이 시작되었다. 경기동부KWMA의 출범은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이들을 복음의 중심으로 초대하는 ‘거룩한 징검다리’의 시작이다.
이 상반된 풍경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교회의 영광은 어디에 있는가? 18세기 영국, 노예무역은 국가 경제의 심장과도 같았다. 그것을 폐지하는 것은 영국의 ‘위대함’을 스스로 허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윌리엄 윌버포스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믿음 하나로 수십 년간 외로운 싸움을 계속했다. 그는 정치적 권모술수가 아닌, 동료 의원들의 양심에 호소하고 끈질긴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마침내 1807년, 노예무역 폐지 법안이 통과되던 날 의회는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교회의 참된 위대함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선포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27-29). 한국 교회는 세상의 ‘위대함’을 향한 미성숙한 투쟁을 멈추고,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되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야 한다. 이주민의 발을 씻기고, 분열된 사회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작은 몸짓이야말로 이 시대를 향한 교회의 가장 강력한 선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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