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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소금인가, 권력의 시녀인가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5-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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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지면은 한국 교회가 서 있는 역사의 분기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한편에서는 다음세대 교육을 위한 정치 참여의 목소리가 높고, 다른 한편에서는 복음의 본질을 상실한 채 민족주의의 옷을 입은 기독교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제기된다. 저 멀리 세속화된 유럽 대륙에서는 교회의 본질인 복음 전파와 개척을 위해 몸부림치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 모든 소식은 한국 교회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세상의 소금으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세상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고 있는가.

교회가 사회적 현안에 목소리를 내고, 특히 자라나는 세대의 가치관 교육에 관심을 갖는 것은 마땅한 책무이다. 신앙은 개인의 내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선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스며들도록 하는 변혁적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방법과 동기가 순수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교회가 특정 정치 세력의 대변자를 자처하거나, 선거의 유불리를 따지는 이익 집단으로 비치는 순간, 복음의 능력은 빛을 잃고 세상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게 된다.

18세기 영국, 윌리엄 윌버포스는 2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노예제 폐지를 위해 싸웠다. 그의 투쟁은 정치적 야망이나 특정 정파의 승리를 위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상품처럼 거래되는 참상 앞에서 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고뇌에 찬 응답이었다. 그의 끈질긴 노력은 권력을 탐하는 정복의 논리가 아닌, 고통받는 이웃을 향한 사랑과 섬김의 논리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세상 속에서 감당해야 할 소금의 역할이다.

유럽 교회의 재복음화 운동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때 기독교 문명의 심장이었던 유럽이 복음이 다시 전파되어야 할 선교지가 되었다는 사실은, 교회가 복음이라는 본질을 놓치는 순간 어떻게 생명력을 잃고 박물관의 유물처럼 변해가는지를 보여주는 통렬한 증거다. 교회의 진정한 힘은 정치적 영향력이나 사회적 명성이 아닌, 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그 자체에 있다. 이 복음을 붙들 때 교회는 비로소 교회다워지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회복하게 된다.

한국 교회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정치적 편의주의와 손쉽게 야합하여 잠시의 영향력을 얻으려 할 것인가, 아니면 윌버포스처럼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세상의 썩어짐을 막는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것인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경고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태복음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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