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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무너진 성벽과 낯선 이웃, 교회의 두 가지 소명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5-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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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지면을 채운 소식들은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안으로는 다음 세대를 위협하는 세속적 이념에 맞서 신앙의 순결을 지켜야 하는 영적 전투가 치열하고, 밖으로는 분열과 갈등의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며 낯선 이웃들을 섬겨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 무겁다. 세계 선교의 지형 변화와 유럽 교회의 고민은 이러한 시대적 과제가 비단 우리만의 것이 아님을 일깨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 교회는 두 가지 소명을 재확인해야 한다. 첫째는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느헤미야의 소명이다. 조전혁 후보와 기독교계의 연대는 다음 세대를 비성경적 가치관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절박함의 표현이다. 사회적 합의 없는 급진적 성 이념이 교육 현장을 위협하는 현실 앞에서, 교회는 진리의 파수꾼으로서 마땅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는 단순히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행위를 넘어, 하나님의 창조 질서라는 무너진 성벽을 다시 세우려는 거룩한 몸부림이다. 성벽이 무너지면 공동체는 외부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둘째는 강도 만난 자의 곁을 지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소명이다. 제주 4·3 사건의 아픔을 보듬고, 이 땅에 찾아온 다문화 이웃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은 교회의 마땅한 의무다. 과거 냉전 이데올로기 속에서 고통받는 이웃의 신음에 침묵했던 과오를 회개하고, 이제라도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앞장서는 모습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또한, 인공지능 기술로 이주민의 한국어 교육을 돕고, 세계 각국의 교회와 선교적 협력을 모색하는 것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대계명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행보다.

고대 페르시아의 총독이었던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재건의 소명을 받았다. 그는 온갖 방해 공작 속에서도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연장을 들고 마침내 성벽을 완수했다. 그러나 그의 사역은 성벽 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율법을 낭독하고, 절기를 회복하며, 가난한 자들을 압제에서 해방시키는 등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적, 사회적 개혁을 이끌었다. 성벽 재건의 목적은 외부와의 단절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고 정의로운 공동체로 바로 서기 위함이었다.

한국 교회는 느헤미야처럼 한 손에는 진리를 수호하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이웃을 섬기고 세상을 건설하는 연장을 들어야 한다. 진리의 성벽을 견고히 세우되, 그 문을 닫아걸고 고립된 요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성벽 안에서 길러낸 사랑과 정의의 힘으로 성문 밖 낯선 이웃과 상처 입은 자들에게 나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소명의 균형을 잃을 때,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태복음 5: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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