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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평화 아닌 그리스도의 평화를 선포할 때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10-02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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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편에서는 군사 동맹이 평화의 상징으로 추대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영적 공허함에 지친 대중이 진리를 찾아 기독교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30년 전쟁의 참화를 끝낸 베스트팔렌 조약을 기념하는 평화상이 전쟁 억지를 명분으로 삼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수여되는 현실은, 오늘날 인류가 이해하는 ‘평화’의 개념이 얼마나 위태롭고 역설적인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로마가 이룩한 평화, ‘팍스 로마나(Pax Romana)’는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반란의 싹을 잘라 유지되던 질서였다. 그것은 힘의 균형이 아닌, 힘의 독점을 통해 이룩한 숨 막히는 고요에 가까웠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저서 『신국론』에서 이러한 ‘지상의 도성’이 추구하는 평화와 ‘하나님의 도성’이 누리는 평화를 날카롭게 구분했다. 지상의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지만, 하늘의 평화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비롯되는 근원적인 샬롬(Shalom)이다.

오늘날 NATO에 수여되는 평화상은 현대판 ‘팍스 로마나’의 논리를 답습한다. 이는 세상이 줄 수 있는 평화의 최선이자 명백한 한계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교회는 세상의 방식을 답습할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차원의 평화를 증거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유럽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불확실한 시대’를 맞아 ‘유럽을 위한 희망’을 논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이고, 혼란 속에서 진리를 갈망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현상은 교회가 선포해야 할 메시지가 무엇인지 분명히 가리키고 있다.

교회가 세상에 주어야 할 희망은 더 강력한 군사력이나 더 정교한 정치적 합의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십자가 위에서 모든 적대감의 벽을 허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27)

세상이 힘의 논리로 아슬아슬한 평화를 쌓아 올릴 때, 한국 교회는 세상이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참된 평화의 복음을 담대히 선포해야 한다. 힘의 논리가 아닌 사랑의 법으로, 군사 동맹이 아닌 거룩한 공교회로, 베스트팔렌의 유령이 아닌 갈보리의 실제로 이 땅에 참된 희망을 증거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 교회의 거룩한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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