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의 광장에서 십자가를, 다음 세대에게는 새 부대를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7-23 07:10
본문
유럽 대륙에서 들려온 두 개의 소식은 오늘 한국 교회가 마주한 현실의 양면을 선명하게 비춘다. 하나는 세속주의의 거센 파도 앞에서 신앙의 공적 표지를 지켜내려는 스위스 교회의 분투이며, 다른 하나는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려는 관성을 깨고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유럽 청년 사역자의 절박한 외침이다. 이는 각각 교회의 ‘대외적 정체성’과 ‘대내적 생명력’이라는 두 가지 본질적 과제를 우리 앞에 제시한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공직자의 종교 상징 착용을 금지한 것은 단순히 장신구 하나를 문제 삼는 차원을 넘어선다. 이는 신앙을 철저히 사적인 영역에 가두고, 공적 영역에서 신앙의 모든 흔적을 지워내려는 세속주의의 제도적 공세다. 국가는 종교에 대해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 아래, 사실상 무신론적 세계관을 유일한 공적 표준으로 강요하는 역설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앞에서 신앙의 상징을 지키려는 스위스 지도자들의 노력은, 가이사의 영역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이 선포되어야 함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싸움이기도 하다.
역사는 이러한 싸움의 가치를 증언한다. 18세기 영국, 노예무역이라는 거대한 죄악이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을 때, 독실한 복음주의자였던 윌리엄 윌버포스는 영국 하원의원으로서 이 싸움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신앙을 의회 회의장 안으로, 법안 발의서 속으로, 동료 의원을 향한 설득의 언어 속으로 가져왔다. 그의 손에 들린 성경과 그의 가슴에 새겨진 십자가는 사적인 경건에 머무르지 않고, 제국의 가장 어두운 현실을 향한 빛과 소금이 되었다. 수십 년에 걸친 그의 투쟁은 결국 노예무역 폐지라는 거대한 열매를 맺었다. 이는 신앙이 공적 영역에서 얼마나 강력한 변혁의 힘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다.
그러나 이처럼 밖으로 신앙의 자리를 지켜내는 동안, 우리는 안으로 그 신앙의 본질을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수하고 있는가. 에비 로데만 사역가의 지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심장을 찌른다. 과거의 영광스러운 부흥, 한때 효과적이었던 전도 방식, 익숙하고 편안한 예배의 틀이 오히려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사야 43:19). 하나님은 언제나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나, 우리가 낡은 가죽부대에 머물러 있다면 그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없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두 개의 전선에 서야 한다. 밖으로는 세속주의의 도전에 맞서 신앙의 공공성을 담대히 변호하고, 안으로는 과거의 타성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다음 세대의 눈높이에서 복음의 본질을 전할 새 길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십자가라는 불변의 진리를 지키되,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은 시대의 필요에 응답하여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세속의 광장에 선 교회가 다음 세대를 향한 소명을 감당하는 길이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공직자의 종교 상징 착용을 금지한 것은 단순히 장신구 하나를 문제 삼는 차원을 넘어선다. 이는 신앙을 철저히 사적인 영역에 가두고, 공적 영역에서 신앙의 모든 흔적을 지워내려는 세속주의의 제도적 공세다. 국가는 종교에 대해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 아래, 사실상 무신론적 세계관을 유일한 공적 표준으로 강요하는 역설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앞에서 신앙의 상징을 지키려는 스위스 지도자들의 노력은, 가이사의 영역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이 선포되어야 함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싸움이기도 하다.
역사는 이러한 싸움의 가치를 증언한다. 18세기 영국, 노예무역이라는 거대한 죄악이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을 때, 독실한 복음주의자였던 윌리엄 윌버포스는 영국 하원의원으로서 이 싸움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신앙을 의회 회의장 안으로, 법안 발의서 속으로, 동료 의원을 향한 설득의 언어 속으로 가져왔다. 그의 손에 들린 성경과 그의 가슴에 새겨진 십자가는 사적인 경건에 머무르지 않고, 제국의 가장 어두운 현실을 향한 빛과 소금이 되었다. 수십 년에 걸친 그의 투쟁은 결국 노예무역 폐지라는 거대한 열매를 맺었다. 이는 신앙이 공적 영역에서 얼마나 강력한 변혁의 힘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다.
그러나 이처럼 밖으로 신앙의 자리를 지켜내는 동안, 우리는 안으로 그 신앙의 본질을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수하고 있는가. 에비 로데만 사역가의 지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심장을 찌른다. 과거의 영광스러운 부흥, 한때 효과적이었던 전도 방식, 익숙하고 편안한 예배의 틀이 오히려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사야 43:19). 하나님은 언제나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나, 우리가 낡은 가죽부대에 머물러 있다면 그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없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두 개의 전선에 서야 한다. 밖으로는 세속주의의 도전에 맞서 신앙의 공공성을 담대히 변호하고, 안으로는 과거의 타성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다음 세대의 눈높이에서 복음의 본질을 전할 새 길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십자가라는 불변의 진리를 지키되,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은 시대의 필요에 응답하여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세속의 광장에 선 교회가 다음 세대를 향한 소명을 감당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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