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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가장 낮은 곳, 교회의 가장 높은 소명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7-21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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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모잠비크의 작은 기독교 복지센터 ‘세켈레카’의 소식과, 영국에서 벌어진 국제앰네스티의 해프닝은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교회의 본질적 사명과 세상의 오해를 동시에 비추는 거울이다. 세켈레카는 ‘일어나라’는 이름의 뜻처럼, 장애라는 이름 아래 숨겨지고 버려진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사역을 감당한다. 이는 진단명이나 기능 이전에 한 영혼의 존엄성을 먼저 보는, 그리스도의 시선 그 자체다. 반면, 세계 최고 인권단체를 자처하는 국제앰네스티는 기독교 단체들을 ‘반인권’으로 규정하는 보고서를 냈다가 철회하는 소동을 빚었다. 이는 생명과 가정의 가치를 수호하는 기독교적 신념을 세속적 인권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시도였으며, 교회의 사회적 기여와 선한 영향력을 의도적으로 폄훼하려는 위험한 흐름을 드러낸다.

19세기 벨기에의 다미안 신부는 하와이 몰로카이섬에 버려진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쳤다. 그는 병자들의 친구가 되어 함께 먹고 자며 상처를 싸매주었고, 마침내 그 자신도 한센병에 걸려 그 섬에 뼈를 묻었다. 세상이 ‘저주받은 자’라며 격리하고 외면했던 이들에게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살아있는 편지였다. 다미안 신부의 삶은 세켈레카의 사역과 맞닿아 있으며, 오늘날 교회가 어디를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교회의 영광은 화려한 건물이나 교세에 있지 않다. 세상이 외면하는 가장 낮은 곳, 가장 고통받는 이웃의 곁에 설 때 교회는 비로소 교회다워진다. 국제앰네스티의 오해는 오히려 교회가 세상의 칭찬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묵묵히 다미안의 길, 세켈레카의 길을 걸어야 할 이유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한국 교회는 다시금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우리의 손길이 누구를 어루만지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세상의 기준과 칭찬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에 교회의 소명이 있다. 주님은 친히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40). 이 말씀이 오늘 한국 교회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부르심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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