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외치는 소리, 시대의 등불이 되어야
한국교회공보 기자
작성일 2026-07-22 07:10
본문
격랑의 파고가 영국의 정치 지형을 또 한 번 뒤흔들었다. 4년 만에 다섯 번째 총리가 들어서는 현실은 서구 사회가 겪고 있는 깊은 이념적, 사회적 균열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혼돈의 한복판에서 영국 복음주의 연합(EAUK)이 신임 총리에게 보낸 서한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스스로를 ‘헌신적이고 비판적인 친구’로 자리매김하며, 사회 통합을 위한 대화와 협력을 제안했다. 이는 교회가 세상의 권세 앞에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오랜 질문에 하나의 답을 제시한다.
때마침 유럽의 복음주의 언론이 공적 영역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부르짖는 목소리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교회의 메시지가 성도들의 울타리 안에만 머무른다면, 그것은 예언자적 선포가 아닌 공허한 자기 위안에 그칠 뿐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주님의 명령은, 교회가 부패하고 어두워진 세상의 심장부로 담대히 걸어 들어가 진리의 빛을 비추고 부패를 막는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는 거룩한 소명이다. 교회는 더 이상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게토(ghetto)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잠든 시대를 깨우고, 길 잃은 영혼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등대가 되어야 한다.
역사는 교회가 세상의 중심에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할 때, 시대가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18세기 영국, 노예무역이라는 거대한 악의 제국 앞에서 모두가 침묵하고 동조할 때, 독실한 복음주의자였던 윌리엄 윌버포스는 홀로 거룩한 싸움을 시작했다. 그는 당대의 총리였던 윌리엄 피트와 절친한 친구였지만, 노예무역이라는 국가적 죄악 앞에서는 가장 날카로운 비판자의 칼을 들었다. 그는 정치를 복음 실현의 도구로 삼았고, 수십 년에 걸친 끈질긴 투쟁 끝에 마침내 대영제국의 심장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추악한 죄악의 사슬을 끊어냈다. 그는 진정으로 국가에 ‘헌신적이었기에’ 가장 ‘비판적인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와 기독교 언론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권력과 여론에 아첨하며 안위를 구하는 궁중 예언자인가, 아니면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선포하는 광야의 예언자인가. 나단이 다윗 왕의 죄를 목숨 걸고 지적했듯, 교회는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담대히 선포할 책임을 위임받았다. 정파적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오직 성경적 진리의 반석 위에 서서, 이 땅의 아픔을 끌어안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에 교회가 감당해야 할 빛과 소금의 사명이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마땅히 드려야 할 응답이다.
때마침 유럽의 복음주의 언론이 공적 영역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부르짖는 목소리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교회의 메시지가 성도들의 울타리 안에만 머무른다면, 그것은 예언자적 선포가 아닌 공허한 자기 위안에 그칠 뿐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주님의 명령은, 교회가 부패하고 어두워진 세상의 심장부로 담대히 걸어 들어가 진리의 빛을 비추고 부패를 막는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는 거룩한 소명이다. 교회는 더 이상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게토(ghetto)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잠든 시대를 깨우고, 길 잃은 영혼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등대가 되어야 한다.
역사는 교회가 세상의 중심에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할 때, 시대가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18세기 영국, 노예무역이라는 거대한 악의 제국 앞에서 모두가 침묵하고 동조할 때, 독실한 복음주의자였던 윌리엄 윌버포스는 홀로 거룩한 싸움을 시작했다. 그는 당대의 총리였던 윌리엄 피트와 절친한 친구였지만, 노예무역이라는 국가적 죄악 앞에서는 가장 날카로운 비판자의 칼을 들었다. 그는 정치를 복음 실현의 도구로 삼았고, 수십 년에 걸친 끈질긴 투쟁 끝에 마침내 대영제국의 심장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추악한 죄악의 사슬을 끊어냈다. 그는 진정으로 국가에 ‘헌신적이었기에’ 가장 ‘비판적인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와 기독교 언론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권력과 여론에 아첨하며 안위를 구하는 궁중 예언자인가, 아니면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선포하는 광야의 예언자인가. 나단이 다윗 왕의 죄를 목숨 걸고 지적했듯, 교회는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담대히 선포할 책임을 위임받았다. 정파적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오직 성경적 진리의 반석 위에 서서, 이 땅의 아픔을 끌어안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에 교회가 감당해야 할 빛과 소금의 사명이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마땅히 드려야 할 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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