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틸리히, 존재론으로 종교와 철학의 관계 재정립 시도
김형석 기자 기자
작성일 2026-07-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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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출신의 루터교 신학자이자 20세기 신학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사상을 담은 도서 '존재론으로 읽는 종교와 철학의 관계: 성서 종교와 궁극적 실재 탐구'(폴 틸리히 저, 남성민 역, 비아 출판, 정현욱 편집인)가 최근 재조명되고 있다. 이 책은 틸리히가 종교와 철학의 관계를 존재론적 관점에서 탐구하며, 신과 인간, 그리고 궁극적 실재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
폴 틸리히는 칼 바르트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신학자로 평가받는다. 독일의 신정통주의 신학을 대표하는 칼 바르트가 초월적 계시를 강조했다면, 미국에서 활동한 틸리히는 계시와 철학의 공통 분모를 찾아 조화를 이루려는 시도를 했다. 그는 스스로를 '경계선'에 있는 신학자라 칭하며, 초월과 내재(범신론적 경향)의 중간 지점에서 신학적 성향을 보였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과 철학의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은 인격이면서 인격인 자신에 대한 부정입니다"라는 그의 저술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이는 블레이즈 파스칼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철학자와 학자의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계시와 사유를 극단적으로 분리했던 입장과는 대조된다. 초대교부 터툴리안의 '예루살렘과 아테네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순수 신앙 고백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틸리히는 오리겐,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후대 교부들이 시도했던 통합적 접근을 계승하면서도, 단순한 통합을 넘어선 '실존적 조화'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20세기 신학자로서의 독자성을 확보한다.
스탠리 그렌츠와 로저 올슨은 '20세기 신학'에서 틸리히의 이러한 성향을 '실존주의적 존재론'으로 규정했다. 틸리히는 철학과 종교 신학을 분리하지도, 그렇다고 무조건 통합하지도 않으면서, 양자가 가진 공통분모를 발견하고 서로에게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의 논증은 인간의 실존과 존재 물음에서 시작하여 성서에 나타난 인격주의로 확장되며, 신과 인간의 상호적 관계로 나아간다.
특히 틸리히는 신과 인간이 '말'을 통해 상호적 관계를 맺는다고 보았다. 하나님의 계시라는 '말'이 주어질 때, 인간은 이를 수용하거나 거절하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이 지점에서 다시 존재론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틸리히는 '개체로서의 개인이 아닌,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이로서의 개인'을 상정하며, 개인을 존재론적 의미와 상황 관계적 의미를 동시에 지닌 존재로 파악한다. 이는 말씀의 담지자인 예언자들이 공동체에서 쫓겨나지만 떠나지 않고 외로움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 책은 분량이 많지 않지만, 틸리히의 예리하고 섬세한 사유를 통해 독자들에게 창조적 통찰을 제공한다. 틸리히의 복잡한 사상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그의 조직신학을 읽기 전 필독서로 추천될 만하다. 부록으로 수록된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설명은 그의 신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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