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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종교개혁, 순교자의 피로 세워진 복음의 승리

김형석 기자 기자
작성일 2026-06-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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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표지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서막을 알린 패트릭 해밀턴(Patrick Hamilton)의 순교가 복음의 씨앗이 되어 30여 년간 지속된 개혁의 불길을 지폈다. 그의 희생은 16세기 스코틀랜드 교회가 겪었던 고난과 박해의 역사를 상징하며, 결국 복음의 승리로 귀결되었음을 보여준다.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씨앗, 패트릭 해밀턴**

패트릭 해밀턴은 1504년경 스코틀랜드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왕족의 혈통을 이은 어머니 덕분에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배경을 지녔다. 13세에는 수도원장직을 맡아 상당한 수입과 평생의 직위를 보장받았으나, 그는 이를 학문 연구에 투자했다. 파리와 루뱅 대학에서 수학하던 중, 1520년 파리에서 마르틴 루터의 저술을 접하며 종교개혁 사상에 눈을 떴다. 1523년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에서 강의와 설교를 시작했으나, 그의 개혁적인 메시지는 곧 세인트앤드루스 대주교 제임스 베이튼(James Beaton)의 주목을 받으며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박해를 피해 독일로 건너간 해밀턴은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망명 중이던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을 만나 성경 번역 작업에 대한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그는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했다. 1528년, 그는 '율법과 복음에 관한 교황주의자들의 오류와 부조리(The Errors and Absurdities of the Papists, Touching the Doctrine of the Law and the Gospel)'라는 소책자를 출간했다. 이 작품은 루터의 영향을 명백히 드러내며, 율법주의에 빠진 당시 로마 가톨릭의 구원관을 비판하고 오직 그리스도와 은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sola fide, sola gratia, solus Christus)을 강조했다.

해밀턴의 이러한 사상은 다시 한번 베이튼 대주교의 분노를 샀고, 그는 즉시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결국 1528년 2월 29일, 세인트앤드루스 대학 성 살바토르 예배당 앞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패트릭 해밀턴은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순교자의 피, 교회의 씨앗이 되다**

초대 교부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는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말했다. 16세기 스코틀랜드에서도 이 말은 진리였다. 1525년 스코틀랜드 의회는 루터의 사상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루터의 책이나 사상을 스코틀랜드에 들여오는 것을 금지하는 법령을 통과시켰다. 이는 스코틀랜드가 로마 가톨릭 신앙을 고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었다.

그러나 해밀턴의 순교는 종교개혁의 확산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죽음은 스코틀랜드 전역에 복음의 진리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해밀턴 이후 1528년부터 1558년까지 30여 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는 유럽 대륙과 영국 본토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의 역사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지만, 스코틀랜드만의 독특한 고난의 역사를 담고 있다.

해밀턴이 '율법과 복음의 논쟁'에서 제시한 시는 당시 로마 가톨릭의 공로주의적 구원관과 종교개혁의 핵심인 '오직 믿음'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율법은 죄에 대한 책임을 묻고 인간의 의로움을 요구하지만, 복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죄 사함과 의로움을 얻게 하며 지옥의 형벌에서 해방시킨다고 선포한다. 이러한 복음의 메시지는 당시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겪었던 죄의 속박과 정죄로부터의 자유를 향한 갈망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개혁의 확산과 교회의 정립**

해밀턴의 뒤를 이어 조지 위샤트(George Wishart)와 같은 개혁가들이 등장했다. 1513년경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위샤트는 해밀턴과 마찬가지로 종교개혁 사상에 깊이 공감하며 복음을 전파했다. 이들의 활동은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뿌리를 내리게 했으며, 1559년부터 1603년까지 장로교회(Kirk)가 스코틀랜드에 확고히 자리 잡는 기반이 되었다.

이후 17세기에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왕 제임스 1세로 즉위하면서 스코틀랜드 교회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교회의 역사는 고난과 순교의 아픔 위에서 세워졌으며, 복음의 진리가 결국 승리했음을 증명하는 역사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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