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샤프 '스위스 종교개혁' 서평: 16세기 파리 대학의 개혁 열풍과 칼뱅의 역할 조명
김형석 기자
작성일 2026-05-28 21:29
본문
필립 샤프(Philip Schaff, 1819-1893) 박사의 기념비적인 저서 '기독교 역사, 제8권: 근대 기독교. 스위스 종교개혁'(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ume VIII: Modern Christianity. The Swiss Reformation)은 16세기 스위스 종교개혁의 복잡한 양상과 그 중심에 섰던 인물들의 행적을 심도 있게 다룬다. 특히 이 책은 종교개혁의 바람이 프랑스 파리 대학에까지 불어 닥쳤던 당시의 상황과 젊은 장 칼뱅(John Calvin)의 초기 활동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샤프 박사는 19세기 독일 출신의 저명한 개혁주의 신학자이자 교회 역사가로, 그의 방대한 저작들은 기독교 역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는다. 그는 방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각 시대의 신학적 흐름과 교회사적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이번에 소개되는 '스위스 종교개혁' 편은 종교개혁의 불길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던 시기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특히 프랑스에서의 개혁 움직임과 그에 대한 반발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1533년 프랑스 파리에서는 종교개혁에 대한 우호적인 기류가 잠시 형성되는 듯했다. 소르본 대학의 보수적인 태도와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 왕비의 저서 '죄인의 영혼의 거울'(Le miroir de l’âme pécheresse)이 정죄되면서 왕비의 오빠이자 국왕이었던 프랑수아 1세와 대학 내 자유주의 인사들이 불쾌감을 표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제라르 루셀, 엘리 쿠로 등 온건한 개혁을 지지하는 설교자들이 파리에서 강론할 수 있는 허가를 얻기도 했다. 이는 당시 파리 대학이 종교개혁 사상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곧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특히 파리 대학의 총장으로 선출된 니콜라 코프(Nicolas Cop)가 1533년 11월 1일, 모든 성인의 날에 행한 취임 연설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연설은 칼뱅이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신약성경에 기반한 개혁을 주장하고 당시 스콜라 신학자들을 복음의 진리를 왜곡하는 자들로 맹렬히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칼뱅은 연설문에서 “그들은 믿음에 대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죄 사함에 대해, 은혜에 대해, 칭의에 대해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거나, 가르치더라도 그들의 율법과 궤변으로 모든 것을 왜곡하고 무너뜨린다”고 비판하며, 이러한 ‘이단과 폐단’을 더 이상 용납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이 연설은 소르본 대학과 파리 의회에 의해 가톨릭 교회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되었고, 즉시 불태워졌다. 코프 총장은 위험을 감지하고 바젤로 도피했으며, 칼뱅 역시 체포를 피해 파리를 탈출해야 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칼뱅은 포도 재배꾼의 복장으로 변장하고 어깨에 쇠스랑을 메고 창문을 통해 탈출했다고 한다. 그의 거처는 수색되었고 서적과 문서들이 압수되었다. 이 사건은 종교개혁의 격렬한 대립과 박해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샤프 박사는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을 면밀히 추적하며, 16세기 종교개혁이 단순한 신학 논쟁을 넘어 정치, 사회, 학문 전반에 걸쳐 거대한 변화를 야기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칼뱅과 같은 젊은 개혁가들이 어떻게 당대의 권위와 맞서며 새로운 신학적 질서를 구축하려 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었던 박해와 고난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이 책은 종교개혁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자 하는 현대 독자들에게 귀중한 통찰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샤프 박사는 19세기 독일 출신의 저명한 개혁주의 신학자이자 교회 역사가로, 그의 방대한 저작들은 기독교 역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는다. 그는 방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각 시대의 신학적 흐름과 교회사적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이번에 소개되는 '스위스 종교개혁' 편은 종교개혁의 불길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던 시기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특히 프랑스에서의 개혁 움직임과 그에 대한 반발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1533년 프랑스 파리에서는 종교개혁에 대한 우호적인 기류가 잠시 형성되는 듯했다. 소르본 대학의 보수적인 태도와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 왕비의 저서 '죄인의 영혼의 거울'(Le miroir de l’âme pécheresse)이 정죄되면서 왕비의 오빠이자 국왕이었던 프랑수아 1세와 대학 내 자유주의 인사들이 불쾌감을 표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제라르 루셀, 엘리 쿠로 등 온건한 개혁을 지지하는 설교자들이 파리에서 강론할 수 있는 허가를 얻기도 했다. 이는 당시 파리 대학이 종교개혁 사상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곧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특히 파리 대학의 총장으로 선출된 니콜라 코프(Nicolas Cop)가 1533년 11월 1일, 모든 성인의 날에 행한 취임 연설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연설은 칼뱅이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신약성경에 기반한 개혁을 주장하고 당시 스콜라 신학자들을 복음의 진리를 왜곡하는 자들로 맹렬히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칼뱅은 연설문에서 “그들은 믿음에 대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죄 사함에 대해, 은혜에 대해, 칭의에 대해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거나, 가르치더라도 그들의 율법과 궤변으로 모든 것을 왜곡하고 무너뜨린다”고 비판하며, 이러한 ‘이단과 폐단’을 더 이상 용납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이 연설은 소르본 대학과 파리 의회에 의해 가톨릭 교회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되었고, 즉시 불태워졌다. 코프 총장은 위험을 감지하고 바젤로 도피했으며, 칼뱅 역시 체포를 피해 파리를 탈출해야 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칼뱅은 포도 재배꾼의 복장으로 변장하고 어깨에 쇠스랑을 메고 창문을 통해 탈출했다고 한다. 그의 거처는 수색되었고 서적과 문서들이 압수되었다. 이 사건은 종교개혁의 격렬한 대립과 박해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샤프 박사는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을 면밀히 추적하며, 16세기 종교개혁이 단순한 신학 논쟁을 넘어 정치, 사회, 학문 전반에 걸쳐 거대한 변화를 야기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칼뱅과 같은 젊은 개혁가들이 어떻게 당대의 권위와 맞서며 새로운 신학적 질서를 구축하려 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었던 박해와 고난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이 책은 종교개혁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자 하는 현대 독자들에게 귀중한 통찰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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