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개혁교회, 212년 만에 전국 단위 시노드 재개… 신앙고백 정립 과제 안고 '새 출발' > 신학 > 한국교회공보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신학

HOME  >  신학/교육  >  신학

프랑스 개혁교회, 212년 만에 전국 단위 시노드 재개… 신앙고백 정립 과제 안고 '새 출발'

김형석 기자 기자
작성일 2026-09-15 09:00

본문

필립 샤프(Philip Schaff, 1819-1893) 박사가 집필한 '기독교 신조사 및 비평 주석(Creeds of Christendom, with a History and Critical notes)' 제1권 '신조의 역사(The History of Creeds)'에 따르면, 프랑스 개혁교회가 212년 만에 전국 단위의 시노드(Synod)를 재개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는 1660년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중단된 이후 212년 만의 일이다.

샤프 박사는 19세기 독일계 미국인 저명한 교회 역사가이자 신학자로, 특히 기독교 신조와 역사 연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그의 방대한 저작은 기독교 역사와 신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에 재개된 프랑스 개혁교회의 제30차 일반 시노드는 1872년 6월 6일부터 7월 10일까지 파리에서 열렸다. 이 시노드는 1660년 앙주 롱던(Loudun)에서 열린 마지막 전국 시노드 이후 중단되었던 전국 단위의 회의를 복원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당시 루이 14세는 시노드 개최가 과도한 비용과 번거로움을 야기한다는 명목으로 이를 금지했으며, 이는 위그노(Huguenots) 박해의 연장선상에서 프랑스 개혁교회의 연합성을 해체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이후 1685년 낭트 칙령(Edict of Nantes)의 폐지는 프랑스 내 개신교도들에게 심각한 탄압을 가했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개신교도들이 프랑스를 떠나거나 지하로 숨어들어 '사막의 교회(Reformed Church of the Desert)'라 불리는 고난의 시기를 겪어야 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루이 16세의 관용 칙령(1787)과 나폴레옹 시대(1802)를 거치며 로마 가톨릭과 함께 개혁교회가 국가로부터 인정받는 종교가 되었으나, 시노드 개최와 같은 자치적 권한은 여전히 제한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871년 11월 29일, 티에르(Thiers) 공화국 정부가 파리와 알제리의 각 지역 교회 대표들이 총회 대의원을 선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칙령을 발표하면서 전국 단위 시노드 재개의 길이 열렸다.

1872년 파리에서 열린 시노드는 49명의 목사와 59명의 평신도 대의원 등 총 108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는 1559년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켰던 선조들의 정신을 계승하는 자리였다. 시노드의 주요 목표는 신앙고백과 규율 체계를 바탕으로 교회를 재조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6세기와 달리 19세기 프랑스 교회는 이미 신학적 변화를 겪고 있었기에, 과거 갈리칸 신앙고백(Gallican Confession)의 모든 조항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16세기 신앙고백 제39조는 이단에 대한 세속 정부의 처벌 권한을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이는 19세기에는 많은 목회자와 신도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조항으로 여겨졌다. 샤프 박사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상세히 기록하며, 프랑스 개혁교회가 과거의 신앙 유산을 존중하면서도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는 새로운 신앙고백과 교회 질서를 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음을 시사했다.
기사 공유하기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