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샤프의 '기독교 신조사' 1권, 개혁주의 에피스코팔 교회의 태동과 신학적 배경 조명
김형석 기자 기자
작성일 2026-09-14 09:00
본문
필립 샤프(Philip Schaff, 1819-1893) 박사의 역작 '기독교 신조사(Creeds of Christendom)' 제1권 '신조의 역사(The History of Creeds)'가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된다. 이 책은 19세기 독일계 미국인 신학자이자 역사가인 샤프 박사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기독교 역사 속 다양한 신조들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심층적으로 분석한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샤프 박사는 독일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을 미국 교회에 소개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미국교회사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학문적 업적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파 간의 화해와 연합을 추구하는 데도 힘썼다. 그의 저서 '기독교 신조사'는 이러한 그의 신학적 지향과 역사적 통찰이 집약된 결과물이다.
이번에 소개되는 제1권은 특히 1875년 미국에서 형성된 개혁주의 에피스코팔 교회(Reformed Episcopal Church)의 태동과 그들이 채택한 신조를 중심으로 당시의 신학적, 교회적 상황을 상세히 다룬다. 이 교회는 조지 데이비드 커민스(George David Cummins) 감독을 중심으로 기존의 미국 성공회(Protestant Episcopal Church) 내 고교회주의(High-Church ritualism)와 배타주의에 반발하여 분리된 단체이다.
커민스 감독은 1873년, 복음주의 연합회(Evangelical Alliance)의 회집과 그곳에서의 성찬 예식 참여에 대한 교구장의 공개적인 반대에 직면했다. 그는 다른 교파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주님의 식탁에 참여할 권리를 포기할 수 없다는 신념 아래, 28년간의 사역을 뒤로하고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이는 마치 로마 가톨릭의 현대 로마주의에 대한 구(舊) 가톨릭의 반항과 유사하다는 평가도 있으나, 샤프 박사는 성공회가 바티칸 공의회와 같은 새로운 교리를 추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음을 지적한다.
개혁주의 에피스코팔 교회는 1785년의 '제안된 기도서(Proposed Book)'와 1689년 왕립위원회(Royal Commission)의 작업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복음주의적 저교회주의(Low-Church) 입장을 역사적 토대 위에 조직화하려는 시도였다. 커민스 감독의 사임은 정식으로 면직 처분을 받았으며, 그의 동료 대다수는 기존 교회 내에서 싸우거나 변화를 기다리는 것을 선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민스 감독은 시카고의 찰스 에드워드 체니(Charles Edward Cheney) 박사를 감독으로 서품하는 등 새로운 교회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는 당시 많은 성공회 인사들이 교회의 존립 근거로 여겼던 사도 계승의 독점권을 흔드는 행위로 간주되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부에서는 교파의 분열을 우려하며 새로운 교단이 기존보다 더 좁아질 것을 염려하기도 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교권주의적 정신에 대한 건전한 경종이 되기를 바라는 시각도 존재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873년 12월 2일, 뉴욕에서 개혁주의 에피스코팔 교회가 공식적으로 조직되었다. 샤프 박사는 이 교회가 이후 미국, 캐나다, 영국 등지에서 꾸준히 성장하여 10명의 감독, 98명의 장로, 약 7000명의 신도를 가진 교단으로 발전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기독교 신조사' 제1권은 이처럼 19세기 미국 교회의 복잡한 신학적 논쟁과 교파 형성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
정통 신학계 관계자들은 샤프 박사의 방대한 연구와 객관적인 서술이 당시 개혁주의 에피스코팔 교회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평가하면서도, 교파 분열이라는 결과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들은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개혁주의 신학의 근본 원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교회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샤프 박사는 독일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을 미국 교회에 소개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미국교회사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학문적 업적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파 간의 화해와 연합을 추구하는 데도 힘썼다. 그의 저서 '기독교 신조사'는 이러한 그의 신학적 지향과 역사적 통찰이 집약된 결과물이다.
이번에 소개되는 제1권은 특히 1875년 미국에서 형성된 개혁주의 에피스코팔 교회(Reformed Episcopal Church)의 태동과 그들이 채택한 신조를 중심으로 당시의 신학적, 교회적 상황을 상세히 다룬다. 이 교회는 조지 데이비드 커민스(George David Cummins) 감독을 중심으로 기존의 미국 성공회(Protestant Episcopal Church) 내 고교회주의(High-Church ritualism)와 배타주의에 반발하여 분리된 단체이다.
커민스 감독은 1873년, 복음주의 연합회(Evangelical Alliance)의 회집과 그곳에서의 성찬 예식 참여에 대한 교구장의 공개적인 반대에 직면했다. 그는 다른 교파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주님의 식탁에 참여할 권리를 포기할 수 없다는 신념 아래, 28년간의 사역을 뒤로하고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이는 마치 로마 가톨릭의 현대 로마주의에 대한 구(舊) 가톨릭의 반항과 유사하다는 평가도 있으나, 샤프 박사는 성공회가 바티칸 공의회와 같은 새로운 교리를 추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음을 지적한다.
개혁주의 에피스코팔 교회는 1785년의 '제안된 기도서(Proposed Book)'와 1689년 왕립위원회(Royal Commission)의 작업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복음주의적 저교회주의(Low-Church) 입장을 역사적 토대 위에 조직화하려는 시도였다. 커민스 감독의 사임은 정식으로 면직 처분을 받았으며, 그의 동료 대다수는 기존 교회 내에서 싸우거나 변화를 기다리는 것을 선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민스 감독은 시카고의 찰스 에드워드 체니(Charles Edward Cheney) 박사를 감독으로 서품하는 등 새로운 교회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는 당시 많은 성공회 인사들이 교회의 존립 근거로 여겼던 사도 계승의 독점권을 흔드는 행위로 간주되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부에서는 교파의 분열을 우려하며 새로운 교단이 기존보다 더 좁아질 것을 염려하기도 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교권주의적 정신에 대한 건전한 경종이 되기를 바라는 시각도 존재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873년 12월 2일, 뉴욕에서 개혁주의 에피스코팔 교회가 공식적으로 조직되었다. 샤프 박사는 이 교회가 이후 미국, 캐나다, 영국 등지에서 꾸준히 성장하여 10명의 감독, 98명의 장로, 약 7000명의 신도를 가진 교단으로 발전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기독교 신조사' 제1권은 이처럼 19세기 미국 교회의 복잡한 신학적 논쟁과 교파 형성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
정통 신학계 관계자들은 샤프 박사의 방대한 연구와 객관적인 서술이 당시 개혁주의 에피스코팔 교회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평가하면서도, 교파 분열이라는 결과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들은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개혁주의 신학의 근본 원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교회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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