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종교개혁의 불꽃, 휴 래티머의 삶과 신앙 조명
김형석 기자 기자
작성일 2026-09-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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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종교개혁의 선구자이자 탁월한 설교가였던 휴 래티머(Hugh Latimer, 1485-1555)의 삶과 신앙이 재조명되고 있다. 래티머는 1485년 레스터셔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에서 교육받았으며, 초기에는 영국 종교개혁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토마스 빌니(Thomas Bilney)와 같은 개혁 신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의 신앙관은 변화를 맞이했다. 빌니는 당시 '화이트 호스 선술집'에서 개혁 신학 토론을 주도했던 인물 중 한 명으로, 래티머는 그의 영향을 받아 종교개혁의 주요 지지자로 빠르게 부상했다.
래티머는 헨리 8세 치하에서 왕실 설교사로 활동했으며, 1535년에는 우스터(Worcester)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그의 개혁적인 신앙관은 이단 혐의로 기소되는 빌미가 되었고, 헨리 8세가 종교개혁에 반발하는 시기에는 두 차례의 투옥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에드워드 6세 시대에 왕실의 총애받는 설교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성경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그는, '최초의 설교집(First Book of Homilies)'에 수록된 '성경 읽기에 대한 유익한 권면(A Fruitful Exhortation to the Reading of Holy Scripture)'의 저자로 추정되기도 한다.
메리 여왕의 종교 박해 시기에 체포된 래티머는 니콜라스 리들리(Nicholas Ridley)와 함께 1555년 10월 16일 옥스퍼드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순교 직전 그는 동료에게 “주님의 은혜로 오늘 우리는 영국에 결코 꺼지지 않을 촛불을 밝힐 것이라 믿습니다”라고 말하며 신앙의 절개를 지켰다.
래티머의 삶은 당시 영국 사회에 종교개혁의 중요성을 알리고 성경 중심의 신앙을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의 설교와 순교는 후대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치며 영국 교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토마스 빌니(Thomas Bilney)와 같은 개혁 신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의 신앙관은 변화를 맞이했다. 빌니는 당시 '화이트 호스 선술집'에서 개혁 신학 토론을 주도했던 인물 중 한 명으로, 래티머는 그의 영향을 받아 종교개혁의 주요 지지자로 빠르게 부상했다.
래티머는 헨리 8세 치하에서 왕실 설교사로 활동했으며, 1535년에는 우스터(Worcester)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그의 개혁적인 신앙관은 이단 혐의로 기소되는 빌미가 되었고, 헨리 8세가 종교개혁에 반발하는 시기에는 두 차례의 투옥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에드워드 6세 시대에 왕실의 총애받는 설교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성경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그는, '최초의 설교집(First Book of Homilies)'에 수록된 '성경 읽기에 대한 유익한 권면(A Fruitful Exhortation to the Reading of Holy Scripture)'의 저자로 추정되기도 한다.
메리 여왕의 종교 박해 시기에 체포된 래티머는 니콜라스 리들리(Nicholas Ridley)와 함께 1555년 10월 16일 옥스퍼드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순교 직전 그는 동료에게 “주님의 은혜로 오늘 우리는 영국에 결코 꺼지지 않을 촛불을 밝힐 것이라 믿습니다”라고 말하며 신앙의 절개를 지켰다.
래티머의 삶은 당시 영국 사회에 종교개혁의 중요성을 알리고 성경 중심의 신앙을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의 설교와 순교는 후대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치며 영국 교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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