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복음주의연맹(WEA)의 신학적 조명
김영한 교수
본문
김영한 교수
(한복협자문위원, 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상임대표, 숭실대 명예교수)
머리말
세계복음주의연맹(WEA, 1846년 런던에서 창립)은 전세계 6억의 복음주의 개신교 인구를 대표하는 국제기구로 여전히 많은 영향력을 미치며,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그대로 계승하고 세계선교운동에도 큰 역할을 감당해왔다. 세계복음주의연맹(WEA)은 세계교회협의회(WCC,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창립) 보다도 무려 102년이나 앞서 설립되어 무신론과 세속주의의 시대적 도전에 거스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노력을 계속해서 감당해 왔다.
오늘날 세계복음주의연맹(WEA)은 로잔선교운동과 함께 세계복음주의운동의 두 축을 이루는 복음주의 운동이다. 로잔운동은 WCC가 지나치게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사회정치적 해방운동으로 나가자, 이에 대한 반응으로 1974년 빌리 그래함과 존 스타트를 중심으로 결성된 복음주의 선교운동이다. 한국교회는 한국 및 국제 로잔위원회를 통하여 지난해 제4차 로잔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세계선교의 동력을 제공하는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올해 10월 WEA 총회를 유치한 만큼 WEA에 대하여 보다 자세히 역사와 신학을 아는 것이 요청되어진다.
I. 세계복음주의연맹(WEA)의 역사
세계복음주의연맹은 143개 국가 내 복음주의 교파들로 구성된 연합체의 모임이다. 정관에 따라 한 국가에서는 하나의 단체만이 연맹(Alliance) 자격을 가진다. 대한민국의 경우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2009년 6월 9일 가입했으나 2011년 분열된 후 소수교단 연합회가 되어 교류중단 상태이며, 한국복음주의협의회(KEF, Korea Evngelical Fellowship)가 정회원으로 가입한 상태다. 현재 WEA의 본부 사무실은 뉴욕, 제네바, 본, 그리고 미국 트리니티 신학교에 있다.
1) 19세기 WEA의 창립 당시 상황
세계복음주의연맹(WEA)은 1846년 영국 런던에서 10개국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모여 당시 시대적으로 도전한 자유주의 신학, 진화론, 공산주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 창설되었다. 1846년 8월 첫 모임이 시작되었고 이 당시 미국, 캐나다, 영국, 아일랜드, 스웨덴,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세계 각국의 52개 교파로부터 800명의 지도자들이 참여하였다.
당시는 시대적 상황은 신학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이 번창하였고, 성경적으로는 독일로부터 밀려온 역사적 비판학(고등비평, higher criticism)이 대두하였고, 과학적으로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 1859)으로 진화론이 시작하였고, 정치적으로는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정치적 경제학 비판』(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konomie, 1867)으로 공산주의가 일어나, 19세기 중엽 서구세계가 혼란을 겪기 시작하던 시대였다. 복음주의자들은 19세기 세계문화의 중심지 런던(London)에 모여 1846년 복음주의연맹(Evangelical Alliance)을 결성하어 성경비평학, 진화론, 공산주의 발흥에 맞서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고자 했다.
1900년대 초까지는 이 기구는 일차적으로 창립멤버 기구인 영국복음주의 연맹(British Evangelical Alliance)이었다. 이 기구는 유럽과 북미에서 불규칙적인 지원을 받다가 1912년에 세계적인 기구로 확대되어 복음주의 연맹(EA, Evangelical Alliance)이 결성되었다. 영적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전 세계를 덮기 시작하던 시대에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성경적 복음주의 신앙과 신학을 수호하기 위해 영국에서 시작되었고 이 운동이 미국으로 확산된 것이다.
2) 19세기 말과 20세기 전반기의 근본주의 운동
당시 19세기 말 미국에서도 현대주의 흐름에 맞서려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운동이 일어났다. 1850년대 이후 성경 유오론, 진화론, 안식교, 몰몬교, 여호와 증인 등 이단 발호와 더불어 자유주의 신학(성경 영감, 재림, 몸의 부활 부인 등) 확산으로 하버드대, 예일대의 좌경화로 복음주의자들은 1878년-1897년 까지 나이아가라 등에서 성경 사경회를 개최하고 기독교 근본진리 보수운동을 시작하였다.
프린스턴신학교의 워필드(Benjamin B. Warfield, 1851-1921)를 중심으로 하는 초기의 근본주의는 1910-1915년 기독교 5대 근본교리(성경의 축자영감, 예수의 처녀탄생 및 신성, 대속적 죽음, 부활, 재림)를 지키고자하는 시리즈 간행물 『근본적인 것들』(The Fundamentals, 1910)을 출간하였다.
20세기 들어와 근본주의 운동은 1930년대 이래 매킨타이어(Carl C. McIntire, 1906-2002)를 중심으로 지나치게 사회문제에 무관심하고 배타적이고 분리주의적인 신근본주의(neo-fundamentalism) 운동으로 발전하자 1942년 헤롤드 오켄가, 데이빗 풀러, 찰스 우드브리지 등이 중심이 되어 「미국복음주의협회」(N.A.E.,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가 결성되었다. NAE는 오켄가가 초대회장(1942-1944)으로 매킨타이어이 설립한 1948년 국제기독교협의회(ICCC, 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 같은 분리주의적 교단협의체 그리고 WCC 같은 극단적 자유주의 교단협의체와 구분하였다. NAE는 성경의 완전영감과 완전무오를 비롯한 근본주의자들이 견지하는 보수신학을 계승하고 연합운동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운동을 전개하였다.
3) 20세기 중반 복음주의 운동의 활성화
20세기 중반 1950년대 일어난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1918-2018)의 복음화 운동은 칼 헨리(Carl F. H. Henry, 1913-2003), 헤롤드 오켄가(Harold John Ockenga, 1905-1985)와 함께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게 되었다. 이들은 복음주의 운동을 더욱 대중적으로 영향력 있는 신복음주의 운동(new evangelicalism)으로 확대시키는 역할을 했다.
헤롤드 오켄가는 분명한 언어적 구사력과 학문적 탁월성을 겸비했으며 복음적 열정을 갖고 사회 전반의 문화와 소통하면서 비판적 사고와 사회참여에 관삼을 가진 새로운 서고의 복음주의자였다. 그는 1947년 풀러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와 1969년 고든콘웰신학교(Gorden-Conwell Theological Seminary) 등 신복음주의 신학교를 설립하여 초대학장을 역임하였고, 보스턴의 파크 스트리트 교회(Park Street Church, 1809년 설립된 보수파 회중 교회)를 담임하면서 새로운 양식의 복음주의 운동을 일으켰다.
칼 헨리는 1947년 풀러신학교 창립 교수로 가르쳤으며, 1956년-1969년 13년동안 자유주의 진영의 「크리스천 센츄리」(Christian Century)에 대항하기 위해 창간된 복음주의 잡지 「오늘날 기독교」(Christianity Today)의 편집장으로 복음주의의 대변자로서 복음주의를 신학적으로 심화시키고 보급시켰다. 헨리는 『현대 근본주의의 불편한 양심』(The Uneasy Conscience of Modern Fundamentalism)이라는 신선한 책을 통해 기독교 신앙인들이 사회 문제와 실질적인 인간의 고통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이것과 전도를 잘 조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근본주의 기독교처럼 세상의 악과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고 현실적 문제를 외면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면 안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논증했다. 또 다른 신학 전통과의 대화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헨리는 빌리 그래함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으며 미국복음주의협회, 캐나다복음주의협회, 세계복음주의연맹, 로잔 언약 등 세계적인 기독교 조직과 모임에도 상당한 신학적 영향을 주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신, 계시, 권위』(God, Revelation, and Authority).라는 6권으로 구성된 조직신학적인 변증서다. 이 저서는 복음주의 신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1987년에 그는 필자의 초청으로 숭실대 제1회 기독교문화 및 신학국제심포지엄에서 “오늘날 개혁신학”(Reformed Theology Today)에 관한 강연을 하였다.
복음주의연맹(Evangelical Allinace) 전통을 계승한 영국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복음주의 지도자들과 제휴하여 전세계적인 복음주의 연대를 구축할 필요성을 느꼈다. 1951년 21개국의 복음주의자들이 모여 조직을 개편하여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 World Evangelical Fellowship)라는 새 명칭을 갖고 뉴욕(New York)에 본부를 두었다. 1980년 이후 브루스 니콜스(Bruce Nicholls)가 이끄는 신학위원회가 활약하면서 개발도상국 선교에 집중하게 되었다.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는 2001년 「세계복음주의연맹」(WEA, World Evangelical Alliance)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오늘날 WEA는 146개 나라 교회들의 연맹이요 143개 넘는 국제 기구과 협력하는 세계적 복음주의 연합기구가 되었다.
III. 세계복음주의연맹(WEA)신학의 특징
세계복음주의운동 신학의 특징은 다음같이 말할 수 있다. WEA는 179년 역사의 주류기독교 교리의 기준인 기독론, 신론, 구원론, 성령론, 교회론 등에 있어 표준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WEA는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유일성, 삼위일체, 부활, 성령충만 등등 기독교의 전통적인 진리들을 모두 진실로 고백하는 단체다.
2001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채택한 '7개조 신앙고백서'(①성경의 영감, 무오, 최고의 권위, ?삼위일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신성, 동정녀 탄생, 대속적 죽음, 몸의 부활, 승천과 재림, ?이신 칭의와 성령으로 중생과 구원, ?성령의 내주와 성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몸의 부활과 영생)에서 신조가 명료히 나타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