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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다드 토바고, 첫 노예 해방일의 역사적 재조명… '폭동과 같은 상황' 속 진실

김형석 기자
작성일 2026-08-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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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사진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첫 노예 해방일이었던 1834년 8월 1일, 당시 포트 오브 스페인 정부 청사 앞에는 약 300명의 전직 노예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며 자신들의 '자유 증명서'를 요구했다. 당시 이들은 노동복 차림이었으며, 무기를 소지하지 않은 평화적인 시위대였다.

정부 청사 안에서는 식민지 관리들과 지주들이 시위대에 대한 대응 방안을 놓고 혼란을 겪었다. 일부는 시위대의 조용한 태도마저 위협으로 간주했으며, 경찰과 민병대 기병대가 시위대를 향해 돌격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시위대는 흩어졌으나 곧 다시 모여 해산을 거부했다.

이날은 현재 공휴일로 지정되어 기념되는 영광스러운 날이지만, 1834년 당시 전직 노예들은 무엇을 축하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했다. 해가 질 무렵, 일부는 체포되어 감옥으로 끌려가 태형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 큰 비극은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당시 주둔군 사령관이었던 헨리 하디 중령의 침착한 대응 덕분에 포트 오브 스페인의 도랑이 빗물뿐만 아니라 피로 물드는 참극을 막을 수 있었다. 하디 중령은 다음 해 사망했지만, 그의 자비와 결단력, 그리고 비를 맞으며 기다린 전직 노예들의 인내심은 식민 당국의 학살 가능성과 지주들의 해방 선포 연기 음모를 모두 막아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기사는 주디 레이먼드가 당시 기록을 검토한 후 작성되었으며, 트리니다드 토바고 가디언에 처음 게재된 후 글로벌 보이스의 허가를 받아 재편집되어 보도되었다.
출처: Global Voices  |  원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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