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공보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목회

HOME  >  교계종합  >  목회

오직 복음 위해 한 평생 달려 온 심재선 원로목사(희락교회)
“나의 나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김성태 기자
작성일 2021-12-07 20:41

본문

|
▲희락교회 심재선 원로목사

매주 수요일마다 강남에 있는 교회에 목회자와 장로들이 모여든다. 수십 명의 작은 모임이지만 가슴은 뜨겁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며 기도하는 모임이다. 벌써 5년 째 기도를 쉬지 않고 있다. 그 중심에 대표총재를 맡고 있는 심재선 원로목사(희락교회)가 있다. 

 “사람들은 ‘목사들이 왜 정치에 관심을 갖느냐?’고 말합니다. 어리적은 질문입니다. 구약 성경은 정치 이야기입니다. 깨어있는 선지자들은 공의가 물처럼,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라고 선포했습니다. 악법에 만들어지면 고치기도 힘들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교회와 백성들이 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이 땅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입니다.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공산주의는 기독교 진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교회를 말살합니다. 사회주의체제에서 가장 요주의는 교회입니다. 북한을 보십시오. 6.25 전쟁 당시 교회가 얼마나 많은 순교의 피를 흘렀습니까? 그러니 이 땅에 다시는 자유가 억압 당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는 시대의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의 불이 꺼져서는 안 됩니다.”

심 목사는 어릴 때부터 의분이 많았다.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홀연히 일어났다. 남의 눈치를 보지도 않았다. 올곧은 성격으로 손해도 보지만 개의치 않았다. 목사로 부름 받아 사역하면서 교회 밖 일선 현장에서도 일했다. 그 중 많은 시간을 나라 사랑을 교육하고, 청소년들을 복음으로 계도하는 현장에서다. 예비군 정신교육을 15년 동안 했다. 법무교정위원으로 45년째 하고 있다. 범죄예방위원, 경찰 복음화에도 헌신했다.

한 번은 형사조정위원으로 활동하다 한 무리의 청소년을 만났다. 오토바이를 너무 타고 싶어 그것을 훔친 것이다. 소년원으로 보내는 대신 계도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집에서 잠언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했다. 어쩔 수 없이 잠언을 읽게 된 청소년들이 놀랍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지난 과오를 참회하고, 마음 잡고 공부해 그 해 대학에 입학했다. 

심 목사는 세상에는 두 죄인이 있다고 말한다. 들킨 죄인과 아직 들키지 않은 죄인이다. 교도소에 있는 죄인은 들킨 죄인이고, 그곳에 가지 않은 우리들은 아직 들키지 않은 죄인이다. 한 강에 돌을 던지면 바윗돌은 풍덩하고 소리가 나고, 모래알은 소리는 없지만 천천히 가라앉는다. 세상에 죄인이 아닌 자는 없다. 누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 세상을 심판하겠는가? 

“예수님은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 시키려 왔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세리의 친구였습니다. 오늘 교회는 세상의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처럼 교회 벽을 쌓고, 분리해서는 안 됩니다. 진실로 복음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벽을 허물고 조건 없이 뛰어가야 합니다. 그들의 애환을 듣고 손을 잡고 함께 울고 웃어야 합니다. 거기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나라사랑국민연합 대표총재로 매주 수요일마다 나라와 민족 위해 기도

평생 추구한 목양일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그 안에 모든 답 있어


심 목사의 관심사는 복음이다. 해외 집회를 가도 조건은 하나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느냐? 고 묻는다.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다. 오직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어디든, 얼마의 돈이 들어가던 달려갔다. 교계 활동을 하면서도 자리보다는 실질적인 일에 관심을 두었다. 내가 그 일을 맡아 충성하여 복음이 전파된다면 기꺼이 어떤 자리도 맡았다. 하지만 단순히 명예를 쫓아가기 위한 자리라면 단연코 거절했다. 평생 누구보다 왕성한 활동을 했다. 명예를 추구했으면 수많은 ‘대표’ 자리를 꾀 찼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명성에 비해 단체의 수장을 맡은 것은 별로 없다. 통합총회 부흥전도단 단장을 맡은 정도다. 그것도 총회 서울부흥전도단 단장을 맡아 너무 열정적으로 일한 것을 보고 후배 목사들이 ‘강제적으로 추대’(?)한 것이다.  

나라사랑국민연합 대표총재는 2년 전 설교하러 갔다가 기도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으로 맡았다. 교계 원로로서 힘을 보태고 싶었다. 2009년 6월부터 2009년 6월까지 학교법인 장로회신학대학교 이사로 재임했다. 거듭 후보 사퇴서를 냈지만 이미 복수 추천으로 교육부에 들어가 얼떨결에 선임됐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은혜로 주신 일에는 마음과 뜻을 다해 진심으로 충성했다. 

40년 동안 올곧게 목양일념을 다하고 2019년 희락교회에서 은퇴했다. 평생 목회하면서 3개 교회를 개척하고, 희락교회에서 마무리했다. 후회 없이 목회했다. 오직 한 길을 걸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 외에는 다른 것에 미련이 없었다. 열정적인 부흥사, 선비 같은 목회자로 한 평생 소신껏 사역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에 가능했다. 지금도 원로목사로서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는 성실하게 참여한다. 후배들과 함께 땀 흘리며 기도하고 말씀을 전한다. 교회에서 목양사역은 은퇴했지만 복음의 사명에는 은퇴가 없다. 

다만 한 가지 목사가 아닌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미안함이 남았다. 개척 당시 너무 어려웠다. 지하 단칸방에 살면서 사역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었다. 밖에서는 좋아했지만 정작 아들에게는 아버지로서 해 준 것이 없었다. 아들이 원할 때 목사인 아버지는 그 자리에 없곤 했다. 목사는 교회의 아버지였다. 그런데 최근 희락교회에서 아들이 장로로 임직을 받았다. 아버지가 세운 교회를 아들이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맡은 것이다.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늘 마음에 아린 가슴으로 남았는데, 이제 아들도 장성한 어른이 된 것이었다. 기쁘다. 세상 어떤 것보다 감사하고 또 고맙다. 

평생 추구한 ‘목회 철학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단 한마디였다. ‘경천(敬天)’,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그 안에 모든 것이 들어가 있다고 했다. ‘목사는 무엇을 사는가?’에 대한 답을 심재선 목사는 삶으로 말하고 있다. 그의 남은 행보도 기대된다. 

김성태 기자

기사 공유하기
추천 0